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
근 3개월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한 와중에 아직 대학 졸업장이 없고, 어학성적도 없는 내 현재상황에서 유일하게 지원할 수 있는 회사가 나타났다. 마치 운명처럼.
묘한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8년 차의 증권사 경력을 내세워 논술 시험 등에 비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류 합격 발표가 나기도 전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먼저는 NCS공부였다. NCS 시험은 단시간 안에 정복할 수 있는 그런 분야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락만 넘으면 된다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전공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고른 전공은 경영학이었다. 그래도 나는 경영학과 3학년까지 다닌 사람이 아니던가.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마땅한 기출문제집이 없어 공기업 전공필기책을 사서 문제를 풀었다. 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았지만 문제집 한 권을 달달 외우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필기 후기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전공시험의 난이도가 경영학 4년 전공시험보다 어려우며 행정고시 5급보다는 살짝 쉬운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시작한 공부를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간절했으니까.
회사에서 틈이 날 때마다 현재 지원하려는 회사와 진행하고 있는 제도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며 논술을 대비했다. 점심시간과 퇴근 이후 시간에는 계속해서 문제집을 풀었다. 근래 들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심이었기에 더욱 깊이 공부에 파고들었기에 은연중에라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필기시험에서 무조건 떨어지겠구나.
금요일 오전. 불합격 통보 후 상심할 나를 위해 급하게 차주 월요일 연차를 냈다. 급하게 낸 연차에 모두가 면접을 보러 가는 거 아니냐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쓴웃음으로 대답했다. 그 연차는 내가 충분히 아파할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으므로.
그래도 기대되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현재의 회사에서 너무나 떠나고 싶었던 요즘 유달리 지원할 회사가 없었던 와중에 처음으로 생긴 기회였고, 그만큼 너무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후 5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러 공기업에서 지원 후 떨어졌을 때는 그저 상심만 했던 것 같은데 현재의 난 그저 깨달았다. 나는 공기업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 깨달음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치열하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몇 년씩 준비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공기업의 필기시험에 절대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NCS는 공부를 오래 한다고 늘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순전히 나 자신 그대로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공시험도 마찬가지다. 금융을 싫어하는 내가. 그래서 대학을 뛰쳐나와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온 내가 오래도록 공부한다고 해서 넘을 수 있는 문턱이 아니었다. 애초에 경영학 공부를 하는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에겐 자기 합리화와도 같이 느껴질 수 있는 감상이지만 나는 이 깨달음이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야 할 길과 가지 않아야 할 길을 명확히 판단할 수만 있어도 현명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 않아야 할 길을 명확히 판단한 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남았다. 나는 지금 이 회사를 계속해서 다닐 수 있겠는가? 사실 연차를 쓴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한 달간의 시간을 곧 이곳을 떠나겠다는 마음으로 버텨왔어서, 회사를 나갈 수 있는 기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의 나는 온전히 출근할 수 없었다. 새로운 원동력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인생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없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나는 연봉은 항상 스트레스와 비례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현재의 내가 연봉을 넉넉히 받는 이유는 그만큼 일로 받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래서 나는 연봉을 확 낮추면 나의 인생이 그래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금 작은 곳이라도, 나의 경력과 맞지 않는 곳이라도. 일에 투입되는 나의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줄여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쏟아붓고 싶었다.
하지만 연봉은 스트레스와 반비례하는 것이었다. 나의 워라밸은 연봉을 많이 줄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큰 회사이기 때문에 보장되는 것이었고, 주변 사람들의 성품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회사의 규모는 우리의 삶을 완전함에 가깝도록 보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남은 회사에서의 삶을 어떻게 버틸 것인가. 곧 나갈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고된 잡일도 열심히 했고, 추가로 부여되는 업무에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나갈텐데 뭐가 불만이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제 어떻게 회사생활을 버텨나갈 것인가.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평소 좋아하던 김민철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에서 작가님은 시야를 좁힐 것을 제안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 것인지, 이번 주를 한해를 그 이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이것, 이것, 이것, 이것을 하는 것으로 시야를 좁히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야를 좁히라는 조언은 내게 큰 위로이자 해결책으로 다가왔다. 미래를 너무 생각하고 고민하며 이렇게 괴로워할 바엔 그저 오늘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퇴근 이후에는 나만의 딴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27살인 내가 올해를 제외하고 더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몇 년일까. 20년 남짓이다.
물 흐르듯 지나갈 20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골머리 싸맬 것이 아니라 20년 이후의 시간에도 시선을 둬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곳에서 매일의 과업을 완수하는 것에만 집중한 채 열심히 딴짓을 해보는 거다. 나는 아마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일단 20년 동안 열심히 딴짓을 해보며 그 이후의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번에 깨달은 교훈을 이용해서. 무엇이든지 해보지 않고는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