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보면 느끼는 점이 있다.
타자가 점수를 내기 위해 집중한 채 발버둥 치면 칠수록 투수에게 말려들게 되고, 투수도 점수를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할수록 제구가 안 좋아진다. 그에 반해 이미 승기를 잡은 상황이라면 투수도 타자도 더더욱 활약하는 것이 야구다.
하지만 승기를 잡기 직전의 0:0의 상태에서는 오늘 이길지 질지 알 수 없다. 또 하루의 경기를 넘어서 10연승을 하다가도 크게 질 수 있고 10연패를 하다가도 크게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전반기, 하반기, 한 해의 1등은 정해진다.
예를 들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올해 1등을 할 때라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10연승을 하는 기간이 있고 10연패를 하는 기간이 있다. 오늘 이길지 내일 이길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실히 경기에 임할 때, 또 1등을 할만한 실력이 갖추어졌을 때 결국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다. 좋은 일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나쁜 일을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내가 원하는 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전까지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일과 나쁜 일, 내가 원하는 일과 원하지 않는 일은 번갈아 가며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인생의 진리가 야구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야구의 선수로써 어떻게 임해야 할까?
그제 한화와 삼성의 경기를 보았는데 한화 타자들이 삼성의 투수인 가라비토에게 맥을 못 추렸다. 가라비토는 타자들을 삼진 아웃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았다. 최대한 치고 싶게 만드는 공을 던져서 뜬 공과 땅볼로 유도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타자들은 더더욱 가라비토의 애매한 타구에도 배트가 나갈 수밖에 없었다. 칠만한 공이 아니라는 것은 타자들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배트가 계속 나가게 됐을 것이다.
그런 급급한 모습들 뒤에 볼펜에는 그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폰세가 있었다. 다음날 경기를 대비하기 위해지고 있는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채로 상대편의 선수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어제 폰세를 의식한 탓인지 삼성의 타자들이 대거 바뀌었음에도 폰세는 6이닝 동안 실점을 하지 않았고 결국 승리를 만들어 냈다. 폰세를 든든히 의지한 채로 한화의 타자들도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장 닥친 어려움에 급급해하면 할수록 상황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얽혀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 수밖에 없는 날은 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견디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오히려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험과 같은 순간, 당장의 고난, 두려움, 어려움 등은 견디어 버텨야 하는 것들이고 그 일들이 지나야 만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쁜 일과 좋은 일의 상관관계란 그러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장에 나에게 닥친 나쁜 일을 견뎌내기 싫다고 피하거나 도망치려고 발버둥 칠수록 좋은 일은 내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 버티는 것과 도망치는 것 중에서. 마주하는 것과 피하는 것 중에서. 그리고 마주하여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면 망설임 없이 굳센 마음으로 해내야한다. 나의 다음 좋은 일을 위해서라도.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