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는 이유도, 방도도 알 수 없을 때
"신사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혹시 정의 내릴 수 있으면 가르쳐 주시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어제 팀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새로운 분들이 오시기 전부터 거즌 한 달간 pc, ip, 전산, 자리 세팅 등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입사 당일을 맞이하게 됐다.
월요일 아침은 누구나 대개 그렇듯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싶어지는 날. 급하게 해야 할 일들만을 우선적으로 끝낸 후 한숨을 돌리려는데 신규입사자가 왔다며 팀장님이 인사를 시키셨다. 각자 이름과, 자신이 어디 회사에서 왔는지 말해나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귓가에서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듣기 싫었다.
이 무슨 혼란스러운 감정일까.
치기도 아니었고 악감정도 아니었다. 그냥 싫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하고 싶었다. 내 앞에 닥친 인계의 나날들과, 새로운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 미래로부터 회피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그래서 애써 인사를 흘려들은 채 자리에 앉았다.
입사자분들이 오시고 나서야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해 보았다. 신규 발급을 위해 외근도 나가야 했고 설치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중간중간 설치 안내를 드리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자리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신규 입사자들이 화장실에서 사용할 서랍함을 새로 주문해 놓으라고.
아마 내 짜증의 계기는 이 서랍함이었던 것 같다. 항상 생글 웃음 지으며, 괜찮다고 자위하며 일하던 나답지 않게 표정관리가 안 됐다. 왜 나는 이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왜 나는 지금 이토록 바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냥 평범한 일상의 한 페이지였을 뿐인데 쌓인 분노가 터지고 만 것이다.
애써 비집고 나오는 감정들을 갈무리 한채 외근을 갔다. 그리고 미처 신규직원분들의 신분증 사본을 챙기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고 연락드렸다. 신분증 사본을 메일로 부탁드린다고. 창구직원 앞에 미안한 마음으로 앉아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리고 연락해 봐도 메일이 오지 않았다. 온갖 시행착오 끝에 35분이 걸려 신분증을 받고 난 뒤 또 한 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왜 여기서 화를 내고 있어야 하는가.
회사로 돌아와서 마저 세팅을 도와드렸다. 새롭게 세팅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 버벅거렸다. 이게 안되면 저게 안 됐고, 저게 안되면 이게 안 됐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나는 분노의 화수분인가. 나 자신을 제어할 수도 걷잡을 수도 없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인지 이유를 몰랐고, 방도도 몰랐다.
일단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에 달달한 과자를 한 개 먹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이래선 안 됐다. 이렇게 화를 내서는 안 됐다. 분노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마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회사가 싫은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사람이 싫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내뱉기 쉬운 감정을 사용하게 된다. 마치 분노처럼. 그래서 나는 그렇게 화가 난 것이었을까.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용실을 찾아가 머리를 댕강 잘라버렸다. 내 머릿속 분노로 절여진 머리카락들을 댕강 잘라내어 달라질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마치 숙녀처럼.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당연한 태도가 되어버린 숙녀가 되어야 했다.
"신사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혹시 정의 내릴 수 있으면 가르쳐 주시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오늘 아침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전날 저녁잠도 충분히 잤고, 아침에 일어나 산뜻하게 달리기도 마쳤다. 잘린 머리는 금세 말랐고 손질하기 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달라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화만 내던 연약한 사람은 이제 없는 것이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나열한 채 하나씩 해나가는 그런 단순하고 절제된 하루를 살아낼 필요가 있었다. 나만의 루틴으로 복잡 다난하고 예측불가한 상황을 제어해 나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