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결혼식에 참석할 겸, 할머니도 뵐 겸 겸사겸사 여수에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짧았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보고 싶었던 풍경들도 많이 봤다. 그동안 일상에 치여 영감이 샘솟을 수 없는 척박한 마음 상태로 살아갔었는데, 조금 마음에 비를 내리게 한 기분이었다.
몸과 마음이 넉넉해져서 집에 돌아와 떨리는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갔는데 이틀새에 3킬로가 빠져있었다. 체중계가 고장 난 것인가 싶어서 이리저리 0점을 맞추고 재보았지만 똑같았다.
이상했다. 느끼기에는 몸도 무겁고 얼굴도 동그래져서 이 몸무게가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덜컥 기분이 좋아져 믿어버렸다. 성인이 된 이후로 가장 적게 나가는 몸무게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꼭 달성하고 싶었던 몸무게였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었다는 기쁨보다는 무언가 불안했다. 내가 어디 중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은은한 염려와 몸무게가 덜 나가서 어쩔 것이냐라는 허무함이 몰려왔다. 의도지 않게 목표를 달성해 버렸을 때의 당황스러움이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 내 힘으로 이루지 않은 것에 대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원래라면 조절했을 저녁도 당당하게 먹었다.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 느낀 것일까. 몸속 가득 염분이 차올라 9시 반부터 잠에 빠져들었다. 과연 이 붓기에 체중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궁금해져 일어나자마자 체중계에 올라섰다. 전날 저녁에 잰 몸무게와 똑같았다.
체중계에 내려와 다시 재볼 겸 영점을 맞추려는데 갑자기 영점이 안 맞춰졌다. 싸늘했다. 빠르게 건전지를 뺏다가 다시 끼워 전원을 켰다. 영점을 다시 맞춘 채 체중계로 올라갔다. 익숙한 몸무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럼 그렇지. 안도감이 몰려왔다.
다만 익숙한 몸무게에 여행의 행복이 껴있는 것 같아 빠르게 밖으로 나와 달렸다. 달리는 내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행복만 좀 빼내면 내가 오래도록 유지한 몸무게로 돌아올 것이었다. 내 몸이 가장 편해하는 그 몸무게가 찾아올 것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건강한 것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운동하고, 관리할 열의가 생기는 몸무게가 나를 맞이할 것이었다.
물론 몸무게가 덜 나가는 것은 참 기쁜 일이지만, 딱히 그렇게 기쁜 일도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전날 잠깐 기뻤던 것처럼, 내 몸무게를 기쁘게 여기면 됐던 것이 아닐까. 몸무게는 나를 결코 오래도록 기쁘게 하지 못한다. 그냥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차라리 몸무게의 기쁨보다는, 내가 나를 아끼며 관리한다는 그 감각이 더 뿌듯하고 기분 좋게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몸무게에 대한 강박이 사라진 것이다.
더하여 행복에 대한 강박도 조금은 희미해졌다. 내 목표 몸무게처럼 내가 행복이라고 정해 놓은 삶에서 멀어진 지금 불안하고 힘든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나다. 하지만 언제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며 나를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지금이 차라리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아득하게 나를 찾아왔다.
몸무게에 대한, 행복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아보려 한다. 차라리 고정된 최저 몸무게의 삶보다, 계속해서 조절하고 노력해야 하는 현재 몸무게의 삶이 더 내게 좋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내가 행복이라 정해놓은 미래는 어쩌면 나의 몸무게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냥....... 지금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