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 고찰 10화

일을 잘하게 되는 순간

잘 흘러가는 법

by 황태

8-9월, 한 달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업무가 확연히 는것이 느껴진다. 새로 받게 될 업무들을 배우는 와중에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를 비워야 하는 직원의 업무 대직을 위해 그 직원의 일까지 배웠다. 남김없이 일을 배워나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새로 맡게 된 일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많았다. 임금피크가 얼마 남지 않은 부장님께 30분 정도 대충 구두로 인계받은 후 부장님은 일주일 동안 휴가를 가셨고, 내 손에 떨어지자마자 생기는 오류들에 지독하게도 많이 일을 파헤쳐 보고 유추해 보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단 며칠 만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업무의 전산 고도화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대망의 업무. 취소 버튼이 구현되어 있지 않는 등 참 허술한 업무인데, 그만큼 오류가 너무 많았다. 매일매일 어떤 오류가 나를 기다릴까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제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제 외국으로부터 2 종목에 대한 이자가 들어올 예정이었고, 이자를 받으면 나는 지체 없이 고객의 계좌에 지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 종목에 대한 이자만이 지급되었고 회사의 화면은 2 종목이 뜨게 되면 일괄처리만이 가능하게끔 구현되어 있다고 했다.


미리 이자가 들어왔다고 가정하고 지급처리를 했을 때 다음 날 이자 금액이 다른 금액이 들어온다면 전산 데이터를 수정해야 한다. (이자금액은 항상 유동적으로 계산되어 들어오기에 알 수가 없다.) 더하여 다음날 처리를 해도 날짜가 지났기 때문에 전산 데이터를 수정해야 한다.


그리고 전산 데이터 수정은 보통 경위서가 필요한 작업이고, 나는 심지어 전산 데이터 수정을 검토하는 담당자와 싸운 상태였다. (친하게 지내다 모종의 사건으로 소위말해 서로 손절한 상황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경위서를 써야 할 만큼의 큰 작업을 해내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어제저녁 10시가 되었든, 11시가 되었든 이자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다.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전산 데이터 수정은 피하고 싶었다. 손절한 사람에게 부탁하며 일을 할만한 염치가 나는 없었다.


하지만 이자는 바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국내 다른 중개기관이 처리를 해줘야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일괄 처리가 아닌 개별처리가 가능한지에 대한 내용을 IT 분들과 테스트해보려 했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그냥 이러나저러나 전산 데이터 수정을 해야 한다면 모험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지급받은 한 건의 이자에 대해 처리를 했고, 남은 한 건은 다음 날 처리하기 위해 지연처리를 해두었다. 지연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지급될 이자금액을 입력해야 했기 때문에 해외 이자 지급 기관이 게시한 지급 스케줄을 참고해 금액의 정확도를 높였다.


이제 관건은 일괄처리 밖에 안된다는 화면에서 다음날 지연처리한 이자도 지급 처리가 될 것인지, 내가 계산한 금액만큼 정확하게 이자가 들어올 것인지가 남았다.


모험이었고 도전이었지만 막연한 믿음이 내 마음속에 솟구쳤다. 개별처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생각이 드는 정황들도 발견되었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버리지 않으실 것임에 대한, 업무를 더 불안해하지 않고 처리하게 하시기 위한 계획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지급처리가 맡은 업무의 세부 업무 중 가장 악명이 높고 어려웠었는데, 어제 하루 종일 이자를 붙잡고 있었던 탓에 이제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오늘 회사에 출근해서 개별 처리가 되는지, 미리 입력한 이자금액도 취소처리가 가능한지만 확인이 된다고 하면 더 편안히 마음 졸이지 않고 업무 할 수 있어질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거대한 흐름으로 느껴졌다.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이러한 것이구나, 이렇게 세련되게 방법들을 제시하여 주시는구나 깨닫게 됐다. 믿음으로 마음이 가득 찬 상태로 출근 중이다.


비록 어제도 너무 힘든 마음에 채용공고를 찾아보다 잠이 들었지만, 지원할 곳이 없는 것도 흐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나는 이토록 크고 거대한 흐름 속의 작은 돌이구나. 흘러 흘러 살아왔고, 흘러 흘러 살아가겠구나. 나의 목적지를 미리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흐름에 놀라거나 거부하지 않고 잘 흘러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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