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의성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
주위에 MBTI 성격 유형 중 ST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것을 떠나 98%가 ST의 성격유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면 내가 조금 이상한가 싶은 순간들이 많다.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고,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면을 생각한다. 말을 하거나 들을 때에도 개념으로 정의되어있는 단어들과 문장에서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한 친구는 바다 위에 선박 한 채가 떠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물 위에 비친 배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물 위에 비쳐 일렁이며 흩어지는 그림자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보며 배를 유추하려 시도해 본다.
나는 조금 독특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정의했었는데 최근에 강의를 들으면서 이런 내가 자랑스러워졌다. 강의에서 법학용어는 다의성을 가지면 안 된다고 했다. 여러 해석이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용어는 다의성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한 가지만을 가리키는 문학용어는 그 빛을 잃고 단순한 글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문학에 가까워지고 싶은 나는, 나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논리적이고 계산을 잘하며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조금 모자란 사람이겠지만,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글쓰기를 통해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여수에서 향일암에 올랐다. 4년 전에는 여름에 방문해서 무척 더웠는데, 그래도 9월이라 버틸만했다. 암자에 오르기 전 마련된 중턱 쉼터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구멍이 송송 뚫린 나뭇잎에 시선이 갔다.
언니들에게 이 나뭇잎 구멍이 뚫려 있다며 신기하게 외쳤다. 언니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나뭇잎이 왠지 처연해서 계속 바라보았다. 나뭇잎에 뚫린 구멍으로 사이에 맺힌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벌레에게 요리조리 물어 뜯겼지만, 그런 뜯김 따위는 한치의 지장도 미치지 못한다는 듯, 시들은 기색 없이 굳건히 매달려 있었다. 벌레 물린 나뭇잎 옆에는 멀쩡한 나뭇잎도 함께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언니들이 눈치채지 못했듯 그 두 잎은 얼핏 보면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했다.
구멍 난 잎은 어차피 떨어지면 다 똑같이 낙엽이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고고한 그 잎의 구멍은 무늬와도 같이 느껴졌다. 화려했다. 하늘빛이 송송 물 들어 있었다.
애써 회사에 매달려 있는 내 처지가 비쳐 보였다. 이리저리 참 상처를 많이 입었다. 유난히 구멍이 뚫렸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멀리서 보니 잘 보이지 않았다.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았다.
떨어져 낙엽이 되기에는 시간이 아직 일렀다. 하지만 잎사귀의 개별자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자꾸만 구멍 속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멍이 많이 뚫려 있을수록 하늘은 더 많이 보였다. 시들어 떨어져 낙엽으로 밟히기 전에 차라리 더 많이 구멍이 뚫려 하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그렇게 나는 벌레 먹은 잎사귀에서 용기를 얻었다. 이런 나라서 나는 내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