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여행자보험을 안 들었다고?

아빠와 단 둘이 떠난 스페인 여행

by 황태

한 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시체스로 이동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비 맞으며 서있고, 땀 흘리며 등산하느라 온몸이 노곤노곤해서 나는 곧 곯아떨어졌다. 아빠는 그 와중에 한숨도 못 주무신 것 같았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 입학 전 고모와 사촌언니와 다녀온 패키지 유럽여행이 생각났다. 하루의 절반이 이동시간이었던 그때 버스만 탔다 하면 깊은 잠에 빠져드는 나를 엄청 부러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정말 유럽여행의 필수 준비물은 잠을 잘 자는 능력과 아무거나 잘 먹는 입맛인 것 같다.


비와 안개를 잔뜩 보고 온 터라 맑은 하늘이 간절했는데 다행히도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점점 하늘이 맑아지는 것이 보였다. 완벽한 맑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마주한 밝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소매치기가 정말 많다는 작은 상가 골목들을 걸어가는데, 자연만 좋아하실 줄 알았던 아빠가 낡은 건축물들을 흥미롭게 보고 계셨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25살에 떠난 유럽 여행에서도 건축물에 흥미가 없었는데, 세월의 풍파를 일찍 맞아서인지 오래도록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 건물들에 눈길이 가고 정이 갔다. 아빠와 나, 둘 다 알지 못했던 취향을 살짝 발견한 순간이었다.


바다와 그 앞에 있는 작은 성당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바다가 평범해 살짝 기대감이 떨어졌다. 그때는 뭔가 자연을 이미 즐길 대로 즐겨 흥미가 없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파도가 신비롭게 친다는 사실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잠시도록 바다를 구경하다가 아빠와 흥미로웠던 골목들로 돌아가기로 했다. 골목골목을 구경하다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돌아가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실 그 이후 일정들에 비하면 시체스에서 본 골목의 건물들은 금방 흥미를 잃을 정도로 별다른 특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 건물과 건물의 틈 사이로 얼핏 보이는 바다, 작은 구멍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건물과 바다의 조화를 느끼다 저녁을 먹고 버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이드가 추천해 준 식당은 꼬치들을 파는 식당과 일반 레스토랑이었는데, 그날따라 꼬치가 먹고 싶지 않아서 일반 레스토랑으로 갔다. 메뉴판을 보며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바다에 왔으면 해산물을 먹어야지라는 생각에 토마토 홍합스튜와 이베리코 돼지 스테이크를 시켰다. 스페인의 샴페인인 까바와 맥주도 한잔씩 시켰다. 본격적인 우리의 첫 식사를 기념할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아늑한 분위기와 마주 앉아 잔을 부딪히는 순간이 평화롭고 또 고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에 취해 나만을 생각하면 안 됐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빠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면 조개를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빠가 홍합을 시키자는 내 말에 잠깐 멈칫했던 걸 알아챘어야 했다.



평소보다 조심조심 더 느릿하게 홍합살을 발라먹던 그때 아빠가 돌연 말이 없어지셨다. 두 눈을 질끈 감으시더니 갑자기 식은땀을 미친 듯이 흘리기 시작하셨다. 나는 사람이 흘릴 수 있는 식은땀이 그렇게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빠의 두 눈이 파르르 떨리며 흰자가 보였고. 휘청하시더니 테이블을 손으로 집고 간신히 버티고 앉아 계셨다. 한참을 그러고 계시다 아빠는 어금니가 부러진 것 같다고 간신히 말하셨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안 그래도 생각이 많고 상상을 많이 해 시끄러운 머릿속 목소리들이 경적을 울리는 듯한 큰 소리로 번져갔다. 그 소리들에 치여 정상적인 생각을 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직원분을 불렀다.


번역기로 말씀드리려는데 가게마다 터지지 않은 데이터가 그날도 말썽을 부렸다. 번역기는 잘 되지도 않고 마음은 너무 급해 콩글리쉬와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어금니가 부러졌다는 말을 몸으로만 설명할 수가 없어 스페인어로 번역하고, 직원이 스페인어로 다시 말하는 식으로 어렵게 대화를 나눴다. 직원분은 일단 응급실을 가서 진단을 받으셔야 음식값을 환불을 해주거나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답변하셨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맞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10만 원 가까이 나온 비싼 저녁이었지만 아빠랑 나는 1/3도 먹지 못했고, 미지근한 물 한잔만 부탁했고, 그 와중에 아빠는 나에게 일단 너라도 먹으라고 말하셨다. 정말 이렇게 나 자신이 원망스러운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비틀대는 아빠를 부축해 버스로 일단 돌아가서 가이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시체스가 우리 숙소와 가깝기라도 했다면 바로 응급실을 가거나 했겠지만, 도심이 아닌 이 휴양지에 제대로 된 치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빠르게 포기 후 일단 버스를 탔다. 1초도 쉬지 않고 주님 제발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를 하며 쉴 새 없이 해결법을 알아보았다. 치과를 가야 하는지, 약국에 약이나 임시방편의 방법이 있는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머리가 팽팽 돌아 터질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여행자 보험도 안 들어서 얼마나 치료비가 나올지 상상할 수 없었다. 한 번도 여행자 보험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내려진 형벌일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치과를 알아볼 방법도 없어 일단 약국으로 향하자는 결론을 내린 후 버스를 내리려는데 가이드 분이 도보 5분 거리의 치과를 소개해 주셨다. 일단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잘 해결되면 연락 한 통 남겨달라고 하셨다.




시간이 오후 7시 반을 넘기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치료를 안 해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빠르게 치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계셨던 데스크 직원 분께 번역기를 틀어가며 상황을 설명했는데 일단 기다리라고 하셨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너무 걱정이 되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런 나를 보며 침착하라고 괜찮다고 직원분이 달래주셨다.


기다리다 보니 한 여자 의사분이 다가왔다. 무언가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에 긴장됐던 마음이 풀리며 더 눈물이 나왔다. 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일단 검사를 하러 가자고 하셨다. 누워서 검진을 받으시는 동안 1초라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던 것 같다.


어금니 2개가 부러진 것 같은데, 신경이 드러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신경이 드러나게 되면 신경치료도 같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끝날 일도 아니고 비용도 엄청날 것 같아 머리가 아파졌다. 다시금 간절히 기도했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서는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하얗고 반짝거리는 병원을 뒤로하고 옆에 으스스한 건물로 들어섰다. 낡은 계단을 걸어 올라 작은 방문을 열어보니 허름한 엑스레이 기계가 있었다. 아빠를 세워 두고 모두 복도로 나온 뒤 문을 닫고 사진을 찍었다. 허름한 엑스레이실을 보니 다시금 불안감이 올라와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나를 달래주셨다.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어디서 왔냐고, 자신도 꼭 한번 한국을 가고 싶다고. 그때부터 안정이 되면서 어쨌든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꼭 이 상황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많은 의사 중 가장 실력 있는 의사가 치료하게 하실 것이라는.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검사 결과는 신경은 손상되지 않았고 부러진 치아만 때우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2일에 걸쳐 치아를 갈고, 때워야 할 뿐 아니라 오늘 스케줄이 꽉 차서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하셨다. 신경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제발 오늘 치료를 다 끝내줄 수 없겠냐고 빌었다. 선생님께서 제발 도와주실 수 없냐고, 우리는 여행자라고. 그러자 난처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퇴근 후 우리를 받아 추가 근무를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너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빠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아를 갈 때마다 괴로워하며 움찔거리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편에 놓인 소파에 앉아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다. 쉴 새 없이 눈물이 났다. 제발 대신 아플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계속 드렸던 것 같다.


스페인 문화인지, 치아를 때우면서도 보조 간호사분과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제발 치료에만 집중해줬으면 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기도했다.




30분이 지나자 치료가 끝났다. 선생님은 아빠에게 불편한 곳이 있냐 물어보셨다. 혀로 떼어진 부분을 만져보신 아빠는 이곳저곳 추가로 갈아달라고 하셨고, 몇 번 갈고 나자 괜찮으신 것 같았다. 아빠와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나중에 한국에 놀러 오면 연락하라고 기쁨에 겨워 이런 말 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다행히 비용도 생각했던 것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해 보니 다시 손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잘 때워졌다고 했다. 아빠도 2일에 걸쳐해야 할 시술을 하루 만에 받아 욱신거림이 있다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잘 치료된 것 같았다.)


참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너무나 감사하다.


기운이 쭉 빠져서 아빠와 터널 터널 숙소를 향해 걸어가며 영상을 찍어 남겼다. 이 날의 생생한 인터뷰는 남겨야 했다. 아빠는 내게 여행자 보험은 꼭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시기 위해,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살펴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셨다. 실제로 이방인인 채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잔뜩 수척해진 아빠의 모습



숙소로 돌아와 바나나 한 개씩을 먹고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것도 없고 기력은 쭉 빠진 정말 힘겨운 날이었지만, 무사히 잘 해결되었다는 점이 사무치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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