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고 일정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 부유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으니 당연한 조건처럼 남들이 우리는 것들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여행쯤은 다닐 수 있고 사고 싶은 것쯤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가난이란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을 뜻합니다.
즉 당신이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 독립적일 수 있고,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건강과 여유, 지식, 기타의 것들을
소량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닙니다.
1 페니라도 더 벌어서는 안 됩니다.
3기니, 버지니아 울프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은 당장 월급 없이 얼마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척도일 것이다. 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건강과 여유를 갖추기 위해서는 넉넉한 자금이 필요하다. (매달 건강한 음식과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게 얼마나 유지비가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지식 등 기타의 것들을 소량 구입할 수 있을 정도 까지라니.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을 가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나는 아직 가난한 사람이었다.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이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영역이다. 왜냐하면 유지비가 많이 드는 사람은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가난을 빠르게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유지비가 적게 필요할수록 나의 자유는 더욱 커지겠다고 생각했다. 살아가기게 충분한 돈을 버는 것이 어렵다면 유지비를 줄여야 한다. 유지비는 나의 욕심을 줄이는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유지비가 적은 사람을 떠올리니 생명력이 가득한 느낌이 든다. 불모의 땅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력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가뿐한, 짐 없이 내 몸뚱이 하나만 있는 느낌이다.
순결이란 당신이 직업으로써 살아갈 만큼
충분히 벌었을 때 돈을 위해서 당신의 두뇌를
파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그만두거나
오로지 연구와 실험을 위하여 종사해야 합니다.
혹은 당신이 예술가라면 예술을 위해서 종사해야 합니다.
또한 직업상 얻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어야 합니다.
3기니, 버지니아 울프
살아갈 만큼 충분한 돈을 벌었을 때 예술을 위해 종사하라고 말한다. 나는 하루빨리 원하는 글쓰기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유지비가 덜 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돈을 위해 두뇌를 파는 것을 거부한 채 오로지 글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회사에서 일할 때마다 회사가 매일 8시간이라는 내 긴 시간을 가져가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가능성은 아직 무궁무진한데 나의 업무를 한정하고 값을 매겨 나의 시간을 사간다. 나의 자유를 위해서는 회사로부터 독립적이기 위해서는 유지비를 줄여야 한다.
어렸을 때 퀴리부인의 자서전을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제일 좋아했던 대목은 우습지만 살고 있는 방이 너무 추워서 옷을 여러 겹 입은 채 덜덜 떨면서 연구를 이어갔던 부분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유독 예술가들이나 연구자들의 고독과 가난함, 고통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부분이 그때 당시 나에게 대리만족이자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쓸데없이 난방을 안 틀고 두꺼운 옷을 껴입는 고집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됐든 고독과 고통을 버텨야만 할 것만 같다.
최근 시험기간이어서, 회사일이 바빠서, 몸이 안 좋아서 등등 회피하고만 있었던 나의 글쓰기다. 하지만 안빈낙도의 삶까지는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상황 속에 내가 존재해야 더욱 글은 빛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가난한 사람이 되려 한다. 나의 유지비를 줄임으로써 자유를 얻은 채 나 자신의 마지막 소유인 글쓰기에 다시 집중해보려 한다. 가뿐하게 나의 몸뚱이만 가지고 세상을 살아보려 한다. 그 외의 가타부타의 것들에서 시선을 가져오려 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