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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받는 날

머피의 법칙에 대한 고찰

by 황태



그런 날이 있다. 무언가 모든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 날. 그것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체중계를 달아보니 무게가 한껏 늘어나 있었다. 전날 저녁에 약속이 있던 탓이지만 오늘 저녁도 약속이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오늘은 팀 커피를 사서 출근해야 하는 날이라 평소보다 빠르게 준비하고 급하게 나갔다. 나름 일찍 지하철 역에 도착하니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빠르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지갑을 가지고 나왔는데 우산을 챙겨야 하는 걸 까먹었다. 마침 티머니를 충전해야해서 급하게 충전하려고 하는데 시간은 늦은 와중에 충전을 하려면 홈페이지에서 청년 할인 정보를 갱신해야 한다고 오류메시지가 떴다. 어쩔 수 없이 충전을 포기하고 여분의 카드로 지하철에 겨우 탔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역에서 나오니 비가 내렸다. 10잔의 커피를 양손에 들고 출근해야 했고 우산도 없어서 비를 뚝뚝 맞으면서 천천히 걸어서 출근했다. 이렇게 모든 일들이 꼬일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해졌다.


출근 후 업무를 하는데 갑자기 2024.01.18. 에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분야에서 처리가 잘못돼서 어제 사고가 났다고 했다. 경위서 작성을 요청하기 위해 처리자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20분 뒤 처리자를 조회해 봤더니 다행히 내가 처리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오늘 하루가 나에게 벌로써 다가왔다.


문득 생각했다. 하루 종일 운수가 좋아 상을 받는 것 같은 날이 있다면 벌을 받으며 자숙해야 하는 날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이 벌 받는 날을 보냄으로써 경각심이 생길 것이었다. 항상 여류롭게 준비하고 빠진 것이 없는지 체크 후 출근하게 될 것이고, 티머니는 미리미리 충전할 것이고, 업무도 더 신중하게 처리할 것이다.


다만 오늘을 이상한 날로 치부해 버리기 시작하면 스탭이 꼬이면서 모든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니 정신을 바로 잡고 경각심을 받아들인 채로 침착하게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떠한 잘못을 하며 산 것은 아닐지 되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자숙기간이다.


자숙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나쁘지 않다. 나의 하루를 지난 과거를 찬찬히 되돌아볼 수 있고 평소보다 한 템포 늦춘 채 천천히 살아갈 수도 있다. 빠르게 달리다가 멈추고 걸어갈 기회는 흔히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예전에는 머피의 법칙이라며 오늘 하루는 망했다며 툴툴거렸지만, 이제는 자숙기간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보려 한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은지 고민하지 말고
선택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겁니다.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

여덟단어, 박웅현

설마 신이 너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겠느냐.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군요.

사람이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고요하고 평안하게 쉬기에는
자신의 정신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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