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잘 해낼 필요는 없다.
'뷔땅!!!' 어쩌고 꼬레엔 저쩌고..‘ 불어로 뭐라고 말하는 T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불어를 못하는 사람이 들어도 뭔가 크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굉장히 화가 많이 났다는 것.
내가 관리하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
T는 내가 일하고 있는 프랑스 회사의 나보다 두 살 어린 대표이다.
가끔 이렇게 큰소리가 날 때가 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도 저렇게 영어가 아닌 내가 못 알아듣는 불어 욕을 듣는 기분은 유쾌하지는 않다.
화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상황을 들어보지도 않고 내는 화는 감당하기도 힘들다.
2016년 봄에 프랑스 가구 스타트업 회사에 첫 번째 직원으로 고용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브랜드를 성장시키려고 노력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중국인도 아닌 내가 중국 공장을 관리하면서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덤터기를 쓸 것 같아서, 한번 더 확인하고, 두 번 더 같은 말을 했다.
'No'라고 말을 안 하니, 사장은 나에게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책임을 주었다. 일단은 해내고 싶은 마음에 알겠다고 말하고 혼자서 끙끙대면서 일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미련했고, 다른 사람의 칭찬과 질책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일했나 싶다.
관리하는 공장은 한 개에서 열개가 되었고, 거의 매일 공장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다른 회사 디자이너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말하면 보통은 내 말을 믿지 못했다. 중국인도 아닌 내가 그 많은 공장을 관리할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내 중국어는 보통 수준이었지만, 협력업체 관리하면서 중국어가 많이 늘었다. 그리고 파리 출장을 다니면서 메종 앤 오프제(프랑스 디자인 페어)에 참여도 했다. 내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면서 내가 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중국어가 느는 만큼 내 몸과 정신은 피폐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디자인보다는 공장관리와 제품 퀄리티 컨트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에 마음은 점점 더 지쳐만 갔다.
회사를 떠날 때쯤 깨달은 것은, 사람의 몸이 언제까지 건강해서 온몸으로 일을 할 수 없다 것이다.
그 3년간의 시간 동안 프랑스 보스와 웃고 울고 서로 좋아하고 서로 욕하면서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번아웃 상태로 프랑스 회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