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날 같은 것
수많은 외국인이 상하이에서 일했다. 페이도 좋았고, 중국어를 못 해도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국제회사들이 많이 있어서 커리어를 쌓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민자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많은 외국인들은 상하이를 잠시 스쳐가는 도시로 생각한다.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처럼 그곳에서 공부하고 그 나라 영주권을 취득한다거나 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상하이에서 장기체류를 하는 외국인들도 꽤 많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간혹 유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는 외국인들이 있다. 내 친구의 친구가 그중에 하나였다. 그에게 왜 다시 상하이에 돌아왔냐고 물어봤다.
-나를 특별하게 봐주는 그 눈이 그리웠어. 나는 유럽에서는 그저 평범한 사람 중에 한 명이거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이어서 받는 혜택보다는 나를 특별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의 태도를 나도 알고 있다.
외국인으로 언어의 장벽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했지만, 중국어로 소통하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웠다. 미팅을 하고 중국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서 언어의 벽에 부딪히는 순간은 많았다. 처음 중국어를 배울 때, 중국친구들이 초대해 주면 무조건 참석했었다. 하지만 10%도 못 알아듣는 그들의 대화. 그 안에서 바보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 순간순간의 답답함들. 프로젝트가 스무스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는 정말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모든 것이 나의 언어 때문 같기도 했었다. ’ 내가 중국어를 한국어처럼 사용해서 소통에 문제가 하나도 없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겠지?‘
10년을 중국어와 영어스트레스로 살아왔다. 스스로 잘한다 격려보다는 중국인들과 미국인들과 비교하면서 나의 중국어를 영어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던 중에 프랑스 동료가 이렇게 말해줬다.
-너는 한국어를 하면서 중국어와 영어를 하잖다. 미국사람 중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나는 한국어도 하고 중국어와 영어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봐!!
나에게 언어 자부심을 심어준 친구. 생각의 각도를 달리하니 중국어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뒤로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원어민과 비교하기보다는 내게 맞는 언어 스킬을 키우면 되는 거였다. 모든 사람이 네이티브 스피커가 될 필요는 없다.
외국인으로 사는 삶은 특별했다. 현지인이 보지 못하는 눈을 갖게 되었고, 나만의 언어로 그 도시를 설계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십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외국인으로 사는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