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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씨 Feb 21. 2023

2022년 회고

스타트업 기획자로서의 11개월을 돌아보며

시작하며


나는 취업 전 5개월 동안 국비 개발자 과정을 거쳤고, 두 번의 웹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 진행 중 대부분의 개발자 교육생들이 만들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를 정의하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기획 직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스타트업의 기획자이다. 그리고 회사의 첫 기획자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사수는 없었고 대부분의 개발자 또한 주니어였다.

대표님은 IT 업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분으로, 기획자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모르셨다.

게다가 나는 기획자로서 첫걸음을 지방에서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나는 성장하고 싶었고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미 시중에 많은 강의가 있고, 구글링만 하면 무엇이든 알아볼 수 있다지만 무엇이 나에게 맞는 방법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기획자로 취직은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우선은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는데 집중했다.

해야 할 일부터 잘 해내야 성장을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유사 서비스를 겉핥기식으로 살펴보았고 무엇이 우리 서비스와 다른지 분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석이라기보다는 우리 서비스에 없는 기능을 찾는데 몰두했다.

그리고 좋아 보이는 기능을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유사 서비스에 이런 기능이 있으니 우리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의 나는 사업의 방향을 읽지 못하고 기능에 집착했다.

내가 제안한 기획서가 통과되었음에도 왜 만들어지지 않는지 알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이해 자체가 부족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갔다.


물론 반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0개가 넘는 종류의 약관을 만들었고, Adobe XD와 Figma를 익혔으며 정부지원 사업계획서도 서너 개 써보았고 발표가지 진행한 하나의 지원사업은 합격하기도 했다.

메인 서비스와 백오피스 두 개를 기획했고, 서비스 플로우를 수도 없이 수정하며 개발팀 내부 회의를 경험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고 관련해서 혼자만의 사업계획서도 몇 개 작성했다.

내부 문화를 만들겠답시고 온보딩 안을 만들고 회사 채용과 노션 페이지를 뜯어고치고, 결재 문서들도 만들어냈다. PM으로 성장하고자 강의를 듣고 최근에는 마이데이터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각종 보안 문서와 내부 지침을 재정했다.

신입 기획자 치고 혼자 뭘 많이 했다. 그리고 나는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잘 못한 것


가장 큰 문제를 꼽아보자면 그 어떤 데이터도 보지 못했다. 회사 내부적인 운영 문제로 운영진은 현재의 데이터들은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수치적 근거를 가지고 개발팀 구성원이나 경영진을 설득해보지 못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기능 개편 또한 사용자 데이터를 근거로 진행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영업직군에서 일했었고, 학원에서 상담 업무 또한 경험했다. 때문에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게 이야기하면 그것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프런트엔드 개발자로부터 내가 업무를 지시하듯 던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내가? 지시를 해? 우리 다 똑같이 지시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 아닌가?'였다.



이 일을 통해 나의 세 번째 문제을 깨달았다.

개발팀 구성원에게 지시받은 일의 목적을 공유하고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위에서 시켰으니까 이렇게 해야 해요'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었다.

시킨 업무를 나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고 전파하는 것 또한 나의 역할이었다는 것을 9개월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프런트엔드 개발자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말해주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른 채로 비슷한 방식으로 일했을 것이다.)




네 번째 문제는 나는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의 예로 '충분히 고민하고 조사해서 이렇게 문서를 잘 썼는데 왜 팀장님은 내가 쓴 것은 제대로 읽지도 않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건방을 떨었다.

그리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고민해보지도 않으며 '나는 지금 잘 성장하고 있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일도 잘하는 나를 인정해 줘! 칭찬해 줘!'라는 얼굴로 회사를 다녔다.


막상 쓰려고 하니 자꾸만 생각나는 부끄러운 과거들이지만 몇 개 더 적어보자면,

'이거 봐 툴을 다루는 숙련도가 이렇게 늘었어. 다 내가 노력한 결과야. 집에서도 연습을 했다니까?'

'내가 회사의 문화를 만들려고 온보딩 페이지도 만들고 온갖 노션 페이지도 정리했어. 어떤 주니어가 이런 걸 해?'

사실 쓰고자 하면 끝도 없이 많은 시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고치려고 한 것


첫 번째 문제인 데이터를 보지 못한 것.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앱 개발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데이터를 읽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슬슬 공부하고 제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023년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두 번째 문제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공감을 시도했다.

나는 극강의 T이다. MBTI 신봉자까지는 아니지만 T와 F의 구분은 상당히 맞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언제나 해결책이 제시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생각을 뜯어고치기 위해 다른 파트의 구성원들이 하는 일들을 겪어보기로 했다.


퍼블리싱을 시도했고 (아직 완성은 하지 못했다.. 아직도 개발은 정말 어렵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디자이너 없이 진행하며 시안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로 인해 깨달은 것은 쉬워 보인다고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모두가 일하는 과정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었다.


그 후에는 그들의 힘든 점을 적극적으로 들으려 했다.

아직 노력한 시간이 짧기에 아직도 스스로 명확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꾸준함을 통해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세 번째 문제인 목적 공유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질문을 했다.


업무 지시가 내려지면 경영진이나 상사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왜 이 시기에, 밀린 업무가 이렇게 많음에도, 왜 이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되묻고 스스로 답하는 연습을 했다.

그로 인해 느낀 것은 회사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있는 곳이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적절한 리소스를 투입하여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능에 집착하여 예쁜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을 적재적소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공감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고, 회사가 성장해야 나도 성장할 가능성이 커지며, 거대해진 회사의 그늘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네 번째 문제는, 객관적인 자세로 나를 바라보며 고쳐나가고 있다.


말 그대로 나는 주니어 기획자이다.

기획자로서 처음 일하게 되었고, 정답을 알지 못한다.

'이게 정말 정답에 가까운 해결책인가?'라고 되물으면 '아니다'라는 대답이 더 많이 돌아오는..


끊임없는 자극을 위해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가까이하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을 멀리했다.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내고자 했다.

적어도 부족한 점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완성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작업물이라도, 아무도 보지 않아도 오직 나의 성장을 위해 다시 들여다보고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지, 다른 해결방법은 없는지 살펴보고 수정했다.


분명히 이 시간들은 나에게 의미 있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마치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기획자로서의 11개월은 전반적인 나의 태도를 고치는데 집중했다.

'기획자가 이렇게 하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내가 생각한 태도 말이다.


그 태도는 결고 단시간의 노력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결국 꾸준하게 만들어가야 할 것이고 내가 성장하며 느끼는 '좋은 태도' 또한 계속해서 변해갈 것이다.

하지만 이 자세만으로 나는 성장하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2023년에는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스스로 정의해보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나만의 바이블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나는 2022년 'PM들의 수다'라는 오픈채팅방을 통해 참 많은 도움을 받았고 참 많이 배웠다.

나의 단기 목표는 더 많은 것을 겪고, 내가 겪은 것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에게 공유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글들을 쓰는 연습 또한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 이 회고록처럼 처음은 서툴고 낯설지만 생각과 정보를 기록하다 보면 나만의 바이블에 가까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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