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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May 26. 2024

Epiphany...방구석에서 신을 만나다

영어로 보는 삶의 풍경 #08

Epiphany: 신의 현현(顯現).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영원에 대한 깨달음과 통찰.

Epiphany는 지상에 강림한 신의 모습을 칭하는 종교 용어로 출발했다(예수의 탄생과 공생애를 기념하는 '주현절'의 이름).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이 개념을 문학적 표현으로 확장시켰고, 오늘날에는 극적 서사의 중요 플롯 포인트, 일상 속의 의미 있는 깨달음과 통찰을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Epiphany 1: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신앙과 예술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방황하던 스티븐 다이달루스는 바닷가를 걷다가가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한 아름다운 소녀를 발견한다. 자신의 이름을 따온 신화 속 다이달루스의 날개처럼 비상하기를 갈망하던 그는, 소녀에게서 '기이하고 아름다운 바닷새'의 모습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낀다. 단 한 번의 시선이 마주쳤을 뿐이지만 "그를 부른 그 눈길에 그의 영혼은 뛰어놀았다." 그 소녀는 젊음과 미의 천사였고, 그 초월적 아름다움과 환희를 경험한 그의 영혼은 예술의 욕망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적인 만남은 평범한 인간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그는 예술가의 길을 걷기 위해 가족과 조국 아일랜드를 등져야 했다.

Jules Talbot

Epiphany 2: <제리 맥과이어>
잘 나가던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는 부상당한 선수를 문병 갔다가 그 아들에게 항의를 받는다. 그날 밤 그는 심오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회사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야심 찬 성명서를 밤새워 쓴다 (심야에 글을 쓰면 위험한 이유). 그 요지는 '고객 숫자는 줄이고, 돈은 덜 벌고, 더 많은 관심으로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자.' 그는 엄청난 열정으로 복사본을 출력해서 새벽에 전 직원의 메일함에 넣어두고 다음 날 출근한다. 전 직원이 그의 성명서에 박수갈채를 보내지만 그는 결국 그 성명서로 인해 해고당한다. 새로 회사를 차리겠다며 함께 나가자고 전도해 보지만, 그를 따라나선 것은 금붕어 한 마리, 여직원 한 명. 제리는 방구석에서 만난 심오한 비전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고난의 여정을 시작한다.


Epiphany 3: <토이 스토리>
앤디의 장난감 가족에게 새로 출현한 버즈 라이트이어는 자신이 우주를 구하는 영웅이라는 사명감과 자긍심으로 무장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TV에서 수많은 버즈들이 등장하는 광고를 보게 되고 자신이 한낱 흔해빠진 장난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보안관 우디는 정신 못 차리는 버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봐, 저 집에는 네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꼬마가 있어. 그건 네가 우주 보안관이어서 아니라, 네가 장난감이기 때문이야. 넌 그 아이의 장난감이야." 버즈는 자신의 발바닥에 새겨진 '앤디'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자신이 꼬마 주인의 사랑을 받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버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piphany 4: 나의 epiphany
미국에 있던 어느 날 바닷가를 산책했다. 눈부신 오후였다. 저만치 금빛 콜리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죽어 있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몸의 상당 부분이 분해되어 가는 중이었다. 어디가 금빛 털의 끝이고 어디가 금빛 모래의 시작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죽음이 순환하는 자연과 완벽한 합일을 이룬 그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죽음은 기피요 어둠이요 절연이어야 하는데, 내가 목격한 그 죽음은 찬란한 빛이요, 조건 없는 포옹이요, 영원한 연결이었다. 죽음은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다.


성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자매(sister death)라고 불렀다 (Canticle of the Sun).


블랑슈는 죽음의 반대가 욕망이라고 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더 이상 젊지 않은 나는 푸르른 욕망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죽음의 누이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중간 어딘가에 서있다.  밤도 오렌지 불빛 아래 앉아 내 발바닥에 새겨진 앤디의 이름을 문지르며 위험한 글쓰기를 계속한다. 방구석에 있는 내게 강림할 신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May the epiphany inspire you on your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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