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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Mar 31. 2024

Easter...토끼의 달걀바구니와 잔혹동화

영어로 보는 삶의 풍경 #07


영미권에서는 부활절을 'resurrection day'가 아닌 'easter day'라고 부른다. 물론 성경에는 없는 말이다. Easter의 어원은 앵글로 색슨족의 'Eostre'인데 다산과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과 같은 어원이다. 이 여신을 기리는 이스터 축제는 부활절과 겹치는 춘분에 행해졌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부활절은  종교적 '전용(appropriation)'이다. 기존의 토속 절기와 축제에 기독교의 주요 절기를 덧씌워 그 종교적 의미를 독점하는 것이다. 그러나 덧씌움을 당해도 살아남는 상징과 전통이 있다.


토끼와 달걀은 다산과 새 생명의 상징이다. 달걀에 색을 입히는 것도 오래된 봄 축제의 전통이고 토끼가 색색의 달걀 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숨긴 달걀을 찾는 놀이도 모두 Eostre 축제에 기인한다. 이런 종교적 전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적 전용으로 완성된다.



부활절은 과자업계의 대목이다. 형형색색의 부활절 달걀 초콜릿과 금박 포장을 한 토끼들이 매대에서 고객을 유혹한다. (크리스마스의 산타와 트리도 같은 맥락이다.)


교회에서 색을 칠한 달걀을 교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면 이게 성찬식의 일종인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상을 배격하자는 원리주의적인 주장은 지혜롭지 못하다. 먼 훗날 신앙을 갖게 된 누군가가 돌이켜 볼 때 부활절의 첫 기억으로 쁘게 색칠한 달걀이 떠오를 수 있다. 그때는 단지 예쁘고 맛난 달걀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달걀 빈 껍질이 빈 무덤의 예표였음을 깨닫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한편에서는 본질의 희석과 왜곡으로 보이지만, 서있는 곳을 바꾸면 섭리와 초대가 되기도 한다.



부활...


무서운 잔혹 동화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창조주가 그 외아들을 죄가 관영하는 세상으로 떠나보낸다. 아들을 보낸 유일한 목적은 그 아들이 신의 저주를 상징하는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다. 온 인류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지었거나 지을 모든 죄를 그 아들이 덮어쓰고 죄인으로 죽는다. 간단히 말해 신이 아들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삼일 만에 그 죽음으로부터 부활한다. 인간의 죄는 신과의 단절이고 그 대가는 죽음이다. 죗값으로 치른 제물이 살아났으니 죽음은 무효가 되고 생명은 영원으로 다시 연결된다. 그것을 사실로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이 잔혹 동화를 듣는 사람 각자의 몫이다.


이런 잔혹동화를 쓴 창조주는 미쳤다.

사랑이 신을 미치게 했다.

그리고 그 미친 사랑은 나를 살렸다.


모든 것이 변하고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면,

순서의 차이일 뿐 아무 의미 없는 이 세상에서,

신이 내게 들려준 잔혹동화는 내일을 살아갈 유일한 소망이다.


까마득한 1609년, 존 단(John Donne) 형님은 내가 죽음이란 녀석에게 하고픈 말을 나보다 더 잘 써놓으셨다.


잠깐 자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난다
그리고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아, 네가 죽을 것이다.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부활절 예쁜 달걀 바구니 안에는 놀랄만한 잔혹 동화가 담겨있다.


죽음이 깜짝 놀랄만한 잔혹 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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