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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Jun 22. 2024

Peeping Tom...이제 넌 외롭지 않아

영어로 보는 삶의 풍경 #20

Peeping Tom: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 여성형은 peeping Jane.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역의 레오프릭 영주가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겨 원성이 자자했다. 그의 부인 고다이버(Lady Godiva)는 남편에게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화가 난 영주는 붐비는 시장 거리를 말을 타고 알몸으로 돌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선언했다. 고다이버는 그렇게 했다. 긴 머리로 몸을 가린 채...  감동한(?) 영주는 약속을 지켰고 말에 부과하는 세금을 제외한 모든 납세의 의무를 면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물론 정사(正史)가 아닌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다.

<Lady Godiva> John Collier (c. 1897) 고다이버 부인을 그린 수작으로 꼽힌다. 후방을 주의하며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는 peeping Tom일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문을 닫아걸고 부인의 고귀한 행동에 대해 예를 갖췄지만, 단 한 사람 톰(Tom)이라는 재단사는 문틈으로 몰래 고다이버의 말 탄 모습을 훔쳐봤다고 한다. 대부분의 기록은 그가 갑자기 눈이 멀었거나 급사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모님이 귀하게 지어준 그의 이름은 '훔쳐보는 놈' 쯤 되는 'peeping Tom'이라는 파렴치한의 대명사로 인류에게 박제되어 버렸다. 타잔의 친구 제인은 이유도 모르고 소환되어 톰의 여성형 'peeping Jane'으로 옆에 전시되었다.


넌 왜 팔이 잘렸니?

레이디 고다이버와 피핑 톰은 세월이 흐르며 각각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은 불의한 관습과 권위에 맞서는 정신과 행동을 뜻한다. 그러나 범용성이 없는 어휘로 그 용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유명한 Godiva의 유산은 벨기에 초콜릿이다. 고디바 초콜릿의 창업주는 이 전설에 감동을 받아 그 이름을 상호로 썼다고 한다. 이 고급스러운 초콜릿을 드시는 분들은 달콤한 맛과 함께 포장지에 아로새겨진 말 탄 고디바 부인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자. (네?)



'Peeping Tom'은 꼭 변태적인 관음인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에 프로시니엄(proscenium)의 사진틀 무대와 어두운 객석은 극장의 표준이 되었고, 밝은 무대의 배우들을 훔쳐보는(?) 어둠 속의 '관객'들을 뜻하는 별칭이 'peeping Tom'이기도 하다. 아예 그 이름을 극단명으로 삼은 벨기에의 무용단 '피핑 톰'은 현실과 초현실이 절묘하게 조합된 놀라운 안무의 세계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Le Salon> by Peeping Tom 2004. 뒤편에 보이는 peeping Tom이 흥미롭다.

그 외에도 일반 시민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peeping-Tom TV 형식의 온갖 리얼리티 쇼,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의 유사한 콘텐츠들, 목숨을 걸고 문틈으로 엿보지 않아도 손 안의 사각형 화면 속 클릭 한 번이면 나는 톰과 제인의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다. 이제 코벤트리의 팔 잘린 재단사 톰과 친구 제인은 수많은 친구들이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런데 동시에 본인이 관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늘 상기해야 한다. 국회에서 어느 의원이 작은 폰 화면으로 누드사진을 훔쳐본다. 기자는 줌렌즈로 당겨 그 모습을 훔쳐보고 사진으로 저장한다. 무한대로 뿌려진 그 은밀한 피핑 톰의 순간은 그 의원의 두툼한 손가락과 함께 박제되어 지금 우리 눈앞에 이렇게 전시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나는 어떻냐고?


'레이디 고디바'초콜릿을 맛나게 먹으며 인스타그램 속 타인의 인생을 심심풀이로 안전하게 훔쳐보는 '피핑 톰' 놀이 중이다. 11세기의 전설은 영웅이 사라진 21세기에도 살아남아 꿋꿋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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