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순이가 아니다.
한때는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에 다녀오면 진이 다 빠져버리는 통에 난 집순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남들과 어울리고 나면 힘이 들고, 나갔다 오면 에너지가 고갈되는구나 생각했다.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이 든 건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라는 거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바빠 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하지만,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난 한 번도 내가 집순인가? 아닌가? 하는 고민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걱정 없이 살기 바빴다. 그래도 모든 게 잘 굴러갔다.
하필이면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 하는 회사에 들어오다 보니 쉬는 날은 꿀같았지만, 오히려 주말 하루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어서 생각이라는 게 많아졌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너무 힘들었으니 일요일은 집에서 좀 쉬자는 생각이 너무 당연해서,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원체 많았던 생각이 방에 가만히 들어앉아있으면 더 많아지기 마련이었는데, 날이 좋으면 더 심해졌다. '아니, 날이 이렇게 좋은데 난 집에 앉아서 뭐 하는 거지', '다들 행복한데 난 왜 이렇게 우울하지'라는 생각이 매주 반복되었다. 남들이 억지로 집에 가두어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날 막아선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지 못할 사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집에서 쉬겠다고 자처해서 앉아있는데도 그런 생각들이 나를 좀먹었다. 지끈거리는 머리와 뒷목은 으레 함께 왔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흘렀을 때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상담을 받아본 적은 없으나 무시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고 느꼈다. 해가 없는 아침에 출근해서 해가 없는 저녁에 퇴근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간 그 잠깐만이라도 해를 받겠다고 길을 걷다 가만히 멈추어 서 있는 게 당연했던 날들. 사원증을 매단 목줄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어깨가 뭉치고 또 뭉치던 날들. 왕복 3시간의 거리를 지하철로 오가며 아침이고 저녁이고 쪽잠을 자기 바빴던 날들.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김없이 서러웠던 마음 덕분에 집 근처를 뱅글뱅글 돌며 한참 울며 감정을 털어내던 매일이 반복되는 게, 지침을 넘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졌다.
훌쩍 떠나고 싶었다. 감정을 정리하고 가볍게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홀로 떠났다. ktx도 있지만 굳이 무궁화호를 택했는데 많고 많은 생각을 아주 오랜 시간 속에 털어내고 싶어서 그랬다. 더 오래 묵은 감정이 그 정도의 시간으로 털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나는 집순이가 아니라는 것, 집에 홀로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새로운 풍경과 느낌을 마주하느라 우울할 시간이 적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좋았다.
혼자 아무 말 없이 걷는 것도, 모르는 길목에 들어서서 새로운 풍경과 마주했을 때 내가 나에게 놀람을 이야기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것도, 아무도 없는 정자에 앉아서 멍하니 눈감고 바람을 느끼는 것도,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다 느낄 때까지 걷고 또 걷다 그제서야 돌아갈 길을 찾아보는 것도, 새로운 번호의 버스를 기다리고, 이어폰 속 노래 대신에 버스 안내방송 속 정류장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며 밖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좋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천천히 밥을 먹고, 누군가와 맞추지 않고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남들이 꼭 가야 한다는 장소가 끌리지 않는다면 가지 않고 그저 아무것도 아닌 동네의 뒷길 옆길을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다. 비로소 내가 나로 존재하는 시간 같았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더 생기 있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회사라는 공간이 익숙해지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한다. 아무리 새로운 물건을 사다 두어도, 하루 이틀 보면 곧 익숙해지고 만다. 집 앞의 공원도, 지하철역까지 걸으며 보는 풍경도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라 퀴퀴 묵은 생각을 털어내기엔 역부족일 거다. 그럴 때는 매번 가던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돌려볼 용기가 필요하다. 매번 산책을 하러 가던 길 말고, 그 반댓길로. 매번 다니던 큰길 말고,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의 길로. 매번 들어가던 아파트 정문 말고 뒤로뒤로 오래 돌아가는 후문으로. 그 길목에, 그 골목 안에 새로운 풍경이 있을 거다. '이런 곳도 있었네' '여긴 어딜까' '저리 가면 어디가 나오지' '여긴 막혔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우리를 잡아먹는 생각을 잠재울 수 있을 거다.
그런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