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색동지갑의 추억

by 미쉘 송

커다란 소나무가 곧게 서 있는 우리 산 밭 옆엔. 너드랑(바위 무더기) 위로 풀이 덮여 있고 가운데 작은 샘이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위 때문에 덩치 큰 소가 풀을 뜯기에는 마땅치 않았지만, 염소를 먹이면서 우리들이 소꿉장난을 할 곳으론 제격이었다. 오후에 염소를 먹이러 간다는 것은 소꿉놀이의 시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친한 여자아이 서너 명이 각 집의 염소들을 몰고 산으로 올랐다. 염소는 풀밭 한쪽에 풀어두고 우리는 우리끼리 놀았다. 평편한 너른 바위를 골라 옷 가게를 차렸다. 옷 가게의 옷은 지천에 깔린 다양한 종류의 나무 이파리들이었다. 넓은 이파리, 기다란 이파리, 붉은색의 도톰한 이파리, 동글납작한 이파리. 색도 모양도 다양한 이파리들이 옷 가게를 채우면 한 번은 주인이 되고, 한 번은 손님이 되어 해가 저무는지도 모르고 옷을 팔고 사며 ‘이쁘다’ ‘멋지다’를 재잘거리며 놀았다. 그렇게 가게 놀이를 할 때면 지갑이 필요했다. 옷은 이파리로 하고 돈도 종이로 만든 가짜 돈 이었지만, 지갑은 진짜 지갑을 챙겼다.


내 지갑은 색동지갑이었다. 조개 모양에 작은 동그라미 똑딱이 잠금이 톡 튀어 올라 앙증맞은 크기였다. 거기다 긴 줄까지 달려 있어 어깨에 멜 수도 있었다. 가게 놀이를 할 때면 색동지갑은 더 돋보였고, 친구들은 색동지갑을 가진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 나는 덩달아 그 앞에서 한껏 뽐을 내곤 했다. 친구들 앞에서 어깨에 뽕이 들어가게 한 색동지갑은 막내 언니가 사 준 것이다. 막내언니는 막내로 칠 년을 살았는데, 느닷없이 내가 태어나면서 막내자리를 잃고 말았다. 갑자기 동생이 태어나 막내자리를 잃고 가족들의 관심이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쏠릴 때 심정은 어땠을까? 보통 그럴 때 아이들은 시기 질투를 느끼며 어린 동생을 어른들 몰래 꼬집기도 하고 때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 기억 어디에도 막내언니의 시기질투는 없다. 늘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나를 돌본다고 초등학교 입학도 1년을 늦췄다. 그때는 그런 일들이 더러 있었다지만, 다 자라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었다. 그런 까닭인지 유독 막내언니를 많이 따라다녔다. 밤에 화장실에 갈 때도 언니는 늘 동행했다. 찬바람 부는 겨울에도 마다하질 않았다. 어떤 날엔 학교에서 급식으로 받은 빵을 남겨와 내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자기도 좋아하는 빵을 다 먹지 않고 동생 몫으로 남겨 왔을까? 그리고 어느 하루, 언니는 운동화를 사러 엄마와 시장에 갔다. 돌아온 언니 손에는 운동화와 빨간 구두가 함께 있었다. 내 구두였다. 구두를 신겨보며 흐뭇해하던 언니의 미소가 아련함으로 스친다. 엄마 말씀으론, 운동화를 고르다 빨간 구두를 보고는 자기 운동화는 안 사도 되니, 구두를 사서 동생한테 신기고 싶다 했단다. 이런 천사를 보았나!? 돈이 넉넉지 못해 두 켤레를 다 사긴 빠듯했지만, 언니의 맘이 기특해서 구두까지 샀단다. 언니한테 고마워하라 하셨다. 그랬다 막내 언니는 착해도 너무 착했다. 그러니 막내자리를 꿰찬 나를 미워하지도 않고, 자라는 내내 돌보고 예뻐했다. 언니도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많았을 땐데 많은 걸 내게 양보했다. 동생이 없는 나는 그게 어떤 마음인지 몰랐다. 아주 나중에 엄마가 되고서야 그 맘이 이랬을까 했다. 자라는 동안 가족들로부터 나눔과 양보, 사랑과 사람의 도리를 배웠다. 그런 배움 덕인지 막내 같지 않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몸으로 체득되어 자연스레 내 안에 스며들었지 싶다.


언니의 사랑으로 따뜻하고 행복했다. 사는 내내 몽글몽글 부드럽고 따뜻한 계란찜 한 스푼의 맛으로 다가와 마음을 녹이는 시간으로 닿는다. 착하고 따뜻한 막내언니! 착함의 끝은 있는 법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그 선함의 끝에 기쁨과 행복이 찾아들어 편안한 삶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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