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애마 너부리

by 미쉘 송

2010년 그 무렵 직장이 창원으로 옮겨지면서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만 했다. 마산과 창원의 끝을 오고 가야 하는 출퇴근길을 버스로 다니기엔 시간적 손실이 너무 컸다. 장롱면허를 벗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남편이 시켜 준 도로연수를 몇 번 받고, 처음 혼자 운전하던 날의 긴장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초보일 때는 출근을 하고 나면 퇴근이 걱정이었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차를 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초보의 시간들을 지나 이제는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드라이버가 되었다.


처음 타던 차를 떠나보내고 지금의 너부리는 나의 두 번째 차다. 너부리는 운송 수단 그 이상이다. 나의 '슈필라움'. 즉, 나만의 공간, 놀이터인 것이다. 음악 감상실도 되고, 어느 날엔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를 담은 갤러리도 되고, 비 오는 날이면 도단 지붕에 떨어지던 빗소리의 추억으로 이끌기도 한다. 옅은 분홍 꽃잎이 휘날리는 봄이면 여배우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나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보낸 시간들이 고단한 삶에 쉼이 되었다. 그렇게 자동차는 내 인생에 스며들었다.

우리 가족들은 내 자동차를 '너부리' 라고 부른다. 그전의 차를 '너구리'라 불렀는데, 같은 회사의 차고 모양도 색도 비슷하여 이름도 비슷하게 지었다. 처음 차는 너구리같이 순둥한 모습을 하고 있어 딸아이가 그렇게 불렀다. 너구리는 안타깝게도 사고로 우리와 헤어졌다. 너구리와 예고 없던 이별은 슬픔으로 남아 한동안 힘들었다. 그 후 새로 구입한 차가 지금의 애마 너부리다. 너부리와 함께 한 세월도 6년을 넘겼다. 아침저녁 나를 태우고 집과 회사를 오가고, 주말이면 근교 나들이를 나가기도 한다. 일 년에 두어 번은 장거리 서울을 오가기도 한다. 이제 차가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편하고 빠른 이면에 안 좋은 것들도 있지만 이미 그 편리함에 길들여져서 쉽게 멀리할 수 없는 존재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잘 모른다. 사라지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 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몇 해 전 차가 없어 곤혹스럽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추위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겨울 아침이었다. 그때 남편은 진주로 발령 받아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매일 오가는 고단한 길이라 원룸을 얻어라 했지만 싫다고 했다. 여느 날처럼 그날도 남편이 먼저 출근을 했다. 나가고 20여 분이 지났을 무렵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끔 도로 상황을 알려주면서 어느 구역이 정체니 돌아서 가라거나 하는 정보를 줄 때가 더러 있었다. 그날의 전화도 그런 전화인 줄 알고 받았다. 그러나 남편의 상기된 목소리는 사고소식을 전했다.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해달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정지 상태가 됐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사고 접수 후 남편에게 전화했다. 다치진 않았는지, 어쩌다 사고가 났는지, 상대방은 어떤지 등등. 걱정과 불안의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남편이 다니던 도로는 진주와 마산을 잇는 국도였다. 진주수목원을 조금 못가 응달진 도로가 있는데, 추운 날, 특히 새벽이나 이른 아침 시각에는 블랙아이스가 생기는 곳이었다. 그 구간을 달리는 남편의 시야에 마티즈 차량이 미끄러져 중앙 가드레일을 들이 받는 게 보였다 한다. 속도를 줄여야 했지만 도로가 얼어 있어 브레이크를 세게 밟을 수가 없었고, 오로지 사고 난 마티즈 차량을 피해 2차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티즈 차량은 피했고, 남편의 차는 중앙 가드레일을 심하게 들이 받고 멈췄다. 차는 완전히 파손되어 폐차를 해야 하는 큰 사고였으나, 감사하게도 남편은 어디 한 곳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 두꺼운 패딩 위로 안전벨트 자국만 선명한 선을 그리며 남아 있었다. '관세음보살'. 모두들 열심히 절에 다니시던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 말했다. 차량의 파손 상태로 보면 운전자도 응급실에 실려 가야만 할 상황으로 보였다. 그 차가 너구리였고, 그렇게 급작스럽고도 안타까운 이별이 다가왔다. 너구리가 안은 큰 상처가 남편을 지켜 주었다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너구리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정들었던 너구리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떠나보냈다.


그 후 문제는 진주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남편이 내가 타던 차(남편이 타던 낡고 오래된 차 : 장거리 출퇴근을 위해 너구리를 양보한 것이었다)를 가지고 가야했다. 그러니 나는 버스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겨울의 한복판에 거리에 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냉혹했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 장갑 등으로 꽁꽁 여미고 다녔지만, 손끝으로 발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움은 온몸으로 번져 소름으로 돋았다. 버스 배차 시간이 길어 한 번 놓치면 삼십 분 정도는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다 히터로 데워진 버스에 오르면 따뜻함이 고마워 눈물이 났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있을 때 소중함을 알고 더 잘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의 편리함에 인간의 활동 범위는 아주 넓어졌고 빨라졌다. 반대급부로 대기오염으로 환경이 파괴되는 슬픈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인류는 이 위기도 극복하리라 믿는다. 점점 전기차시대로 전환이 될 것이고, 그 에너지원도 자연에서 얻는 대체에너지가 되어 맑은 대기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꽃이 되듯, 자동차도 내게로 와 ‘너부리’가 되었다. 살뜰히 아끼고 조심스레 돌보며 너부리와 오래 동행하고 싶다. 나의 애마 너부리! 일상을 함께 하는 친구다. 오늘도 우리는 안전운행하며 서로를 지켜는 파수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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