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시인 문 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문 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이 시를 읽었을 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었다.
어쩜 이리도 내 마음을 잘 적어 놓았는지... '아버지도 오빠도 아닌'
우리 부부는 일곱 살 나이차가 난다. 일곱 살 차이가 크게 다가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위의 언니랑 같은 나이라 그랬지 싶다. 언니 오빠들과 나이차가 많은 환경에서 살다 보니 일곱 살 차이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결혼할 당시 우리는 양가의 도움 없이 모든 걸 둘이서 준비했다. 얼마 되지도 않던 전세자금도 대출을 반이나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혼수로 받을 패물들도 다이아는 꿈도 꾸지 않았다. 몇 년 지나서야 차라리 다른 것들은 다 생략하고 다이아반지 하나를 할 걸 하는 후회가 있었다. 그러나 결혼할 당시 패물로 뭘 받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블루 사파이어가 박힌 혼수세트로도 충분했다. 그런 계산을 할 줄도, 세상도 모르는 어리숙한 젊은 처자였다. 그러다 결혼 10주년에, 잘 끼지 않는 결혼반지를 디자인을 새로 세팅해 심플한 커플링으로 만들었다. 결혼 당시 디자인된 반지는 늘 끼고 다니기엔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10년쯤 지나 결혼 20주년이 다가왔을 때, 영롱한 반짝임을 지닌 다이아몬드 반지가 내 손가락에 끼워졌다. 남편의 결혼 20주년 선물이었다.(남편이 직접 사 와서 끼워 준 것은 아니다. 디자인은 내가 고르고 계산은 남편이 했다) 쌈짓돈으로 주식 투자를 했는데 그게 잘 되어 수익이 났단다. 20년을 부부로 살면서 이런 저런 일들도 함께 겪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우리는 운명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지난 시간들을 잘 보낸 서로에게 고맙고 감사하며 앞으로의 시간도 잘 살아보자는 응원이 필요한 타임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반지를, 나는 시계를 서로에게 선물 하며 마음을 나눴다. 티아라 모양 안에 다이아가 박힌 우아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와 겹 반지는 지금도 내 손가락 위에서 영롱한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다. 남편의 시계도 계절마다 가죽과 메탈의 끈으로 체인지 되며 매일 남편의 손목에 놓여 있다.
부부의 연이 이어지는 조건엔 서로의 이해와 배려, 신뢰와 애정이 함께 해야 한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며들어 비슷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반지와 시계는 단지 물성으로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물건들은 우리가 떠나는 순간까지 함께 할 것이고, 우리 아이들에겐 엄마아빠의 추억과 사랑을 간직한 물건이 될 것이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갱상도 아재! 퇴직하고 가벼운 일로 일상을 보내는 우리 집 조개 아저씨! 일곱 살 어린 나보다 흰머리수가 적은데도 자기 흰머리 많다고 염장 지르는 눈치 없는 아재! 가족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뿡뿡거리는 방귀대장 아재!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아내를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다정한 아재! 뽀글 머리로 베토벤이 된 아재!
인생의 후반부도 건강하게 잘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