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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이 May 11. 2024

나는 매일 호텔 룸서비스를 받는다

이런저런 부푼 꿈을 꾸고 시작한 독립


거실은 예쁜 카페처럼 꾸미고, 부엌은 찜해뒀던 조리도구로 채우고, 안방은 킹사이즈 침대를 넣어야지. 하나씩 준비하다 보니 예산이 만만치 않았다. 큰돈을 써본 적이 없어서 훅훅 빠져나가는 돈이 이런 게 독립이구나 더 실감이 났다. 당장 급하지 않은 것은 차츰 미루게 되었다. 


가장 우선순위로 미루게 된 것은 바로 세탁기와 건조기. 세탁기와 건조기를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막상 주문을 하려니 손이 가질 않는다. 드라이를 주로 하는 편인데 세탁기랑 건조기는 아직은 무리 아닌가? 다음에 이사 갈 때 제대로 사는 게 낫지 않나? 결국 세탁기, 건조기는 다음으로, 다음으로. 저 다음으로.


그럼 빨래는 어떻게? 옆 동에 살고 있는 언니네에서 1주일에 두 번 빨래를 하기로 했다. 빨랫감을 맡긴 후 세탁부터 건조까지 다 되면 전화가 온다. 빨래 다 됐으니 먹으러 오라는 언니의 전화다. 빨랫감을 찾으러 가면 식사도 함께 제공된다. 비록 메뉴를 정할 수는 없지만, 오마카세처럼 주인 마음대로 한 상이 차려져 있다. 


찾아오는 서비스 대신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이지만, 전화벨 하나에 세탁 서비스도, 식사 서비스도 받는다.  빨랫감을 모아가면 세탁, 건조에 개기까지. 가끔은 집으로 곱게 개어진 세탁물과 식사가 함께 온다. 


그러니까 조카가 하는 말

"이모는 이사를 온 거야? 호텔을 온 거야? 완전 호텔 룸서비스네"


"응, 그래 이모는 지금 호텔 룸서비스받는 중이야. 여기 호텔 서비스 참 좋네"



이렇게 나는 매일 호텔 룸서비스를 받으며 독립일을 채워나간다. 독립인 듯 독립 아닌 듯 독립 같은 나의 독립.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면서. (룸서비스에 너무 익숙해져서 과연 살까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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