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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ul 24. 2017

망고 스틴

손에 들린 망고스틴에도 비가 들이쳤다.

#쉰한 번째 글


여왕이 사랑한 여왕


제 시간이 가장 많아진 낮은, 저녁 늦도록 달군 공기를 끈질기게 이어갔다. 이젠 밤에도 그 열기가 남아 불어오는 바람에도 답답한 숨이 따라온다. 조금 이른 '열대야'에 밤잠마저 설칠 지경이니 시원한 과일이라도 먹어야겠다. '눈에 눈 이에는 이' 맥락 없는 소리지만, 열대야에는 열대과일을 먹어야겠다.

나에게 망고 스틴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기사의 작위를 내리겠노라

과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그 풍미와 맛에 반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망고 스틴은 '과일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왕이라는 소리가 조금 의아할 정도로 투박한 모양새를 가졌지만, 그 껍질 안에는 곱디 고운 순백의 속살이 숨어있다.


황후(皇后)를 닮은 기품


일국의 가장 지체 높은 여인을 서양에서는 '여왕 Queen' 동양에서는 '황후(皇后)'라 칭하는데, 둘은 이름만 다를 뿐 한 명의 여인을 뜻하고 있다. 하나, 망고스틴은 황후에 더 가까우리라.


단순히 여왕이라는 뜻을 가진 'Queen'과 달리, '(皇后)'는 한자어 하나하나에 그만의 뜻을 갖고 있어 이름의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 열매를 맺기 위해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망고스틴은 어쩌면, 황후(皇后)라 칭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망고 스틴은 동남아에 속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남부 베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다. 물론 이외의 지역에서 이전부터 재배하기 위해 부단히 시도하였으나, 대부분 실패했을 정도로 환경적인 요소를 중요시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공을 했으나, 크기와 맛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함) 


재배지에서 조차 뿌리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고, 내린다 해도 그 기간은 8~10년을 잡아야 가장 고품질의 열매를 얻을 수 있으니,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땅 외에 쉽게 자리하지 않으며, 결실을 위한 긴 기다림을 겸허히 순응하는 망고 스틴.

진정한 맛이 궁금하다


과일의 여왕이라 불리는 만큼 망고스틴은 산지에서 맛이 뛰어나다 평가받는다. 하나, 국내에서 접하는 망고스틴은 어쩌면 그 작위를 박탈 당한채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다.


바나나, 망고와 같은 열대과일과 달리 망고스틴은 따로 후숙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수확 시점부터 즉시 섭취가 가능하며, 통상적으로 수확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섭취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하나, 그 마저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차츰 맛이 떨어지기에 최대가 10일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맞겠다.


결국, 망고 스틴을 수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우리나라는 최상 컨디션의 망고스틴을 먹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수입을 해오는 과정에서 수일을 소모하고, 국내 시장에 입하되는 즉시 소비자의 식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국내에 들어오는 망고 스틴은 신선도를 위해 냉동유통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부 기업에서 산지와 직접 계약을 통해 항공편으로 받아 판매 함으로써, 냉동이 아닌 생과로도 유통한다고 하니, 황후와의 대면이 불가능하지 많은 않을 듯하다.

망고 스틴을 맛보다


근처 과일가게에서 망고 스틴 한 망을 샀다. 망고스틴은 낱개로 팔기보단 붉은 망에 6~7개 정도를 넣어 팔고 있었기에 한 망 정도면 충분했다. 딱딱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참 좋다. 집에 도착하고 망을 뜯어 한알을 꺼내 들어보니, 탁구공보다는 조금 큰 듯했다. 


속살이 여린 녀석인 만큼 칼로 써는 것보단 손으로 쪼개는 게 나을 듯했고, 양손으로 잡아 힘을 주어 껍질을 벗겨 냈다. 그리고 하얗게 윤기가 흐르는 마늘 쪽과 닮은 속살이 얼굴을 내밀었다. 귀여운 모양새다. 껍질에서 나오는 즙은 산지에서 염료로 쓸 정도로 색이 진해 속살도 착색되어 있을 줄 알았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떤 맛일까.


귤을 까듯 조각으로 나눠 하나를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에 차오른다. 귤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귤처럼 속 껍질 같은 것이 없어 좀 더 부드럽게 씹혔다. 단맛이 은은하게 퍼졌다. 직접적으로 가 아닌 우회하여 단맛을 흘려보내는 듯하다. 

그날은 말 그대로 폭우가 내리던 아침이었다. 하늘이 자멸(自滅)할 듯, 과하리 만큼 천둥을 내리치고 있었다. 온갖 비명을 질러 대듯이 괴로워 보이기까지 하던 날, 집을 향하는 길이었다. 빗줄기가 빈틈없이 공중을 빽빽이 채우니 우산은 있으나 마나 했고, 손에 들린 망고스틴에도 비가 들이쳤다.


꽤 오랜 시간 빗줄기를 하나하나 헤아리며 걸어와 집에 도착했음에도, 집 안은 울림통이라도 된 듯 빗소리를 사방에서 뱉어내고 있었다. 몸에 닿지 않는 비가 집 안에서도 내리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먹었던 망고스틴은 빗소리에 주둑이라도 든 것처럼 입안에 잔잔히 단맛을 피웠다. 작게,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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