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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UIT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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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ug 21. 2017

황금빛의 벼

인천 강화는 쌀로 유명하다. 이곳이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 9~10월이면, 땅은 가을과 가장 가까운 색을 띤다. 햇빛인지 노을인지 모를 것들이 땅에 부서져 내리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벼는 고개를 숙인다. 그것이 마치 무언의 사인인 듯, 햇빛을 닮은 구릿빛 피부의 농부가 시원하게 부는 색 노란 바람과 함께 고개 숙인 벼를 수확하면, 우리는 수확해 낸 햇빛으로 또다시 일 년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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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지만, 여전히 근래에 하늘은 비를 쏟아내기 바쁘다. 자연스레 언젠가 찾아올 햇빛에게 보채 듯, "햇빛 좀 비췄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요즘. 삼일 전쯤 세상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던 햇빛이 아직까지 눈앞에 아른거린다. '쌀'이라는 농작물이 우리의 주식이 되어 생활의 가장 밑바닥부터 채워주는 것처럼, 햇빛이 회색의 건물이며 검은 아스팔트, 지나는 사람들까지 가장 작은 곳마저 빠짐없이 물들이던 그날은 딱, 노르스름하게 익은 벼와 같았다.


쌀의 의미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쌀은 사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로 우리나라는 중국을 거쳐 기원전 2000년경에 들어왔으며, 본격적인 보급이 이루어진 것은 1천여 년 정도에 불과하다. 즉, 쌀과 보리·밀의 세계 총 생산량 92%가 아시아지역에서만 재배된다는 통계도 있는 만큼,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 또한 밥심으로 움직인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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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살게 했고, 나라를 세우는 힘이 되어준 쌀. 오랜 역사만큼 수많은 신화를 쌓아왔는데 특히, 원산지인 동남아에서 알려진 신화 중 두 가지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시체화생형(屍體化生型): 죽은 여자의 시체에서 조 ·사고야자 ·코코야자 등의 재배 식물과 함께 쌀이 생겼다는 신화와, 다른 하나는 수락신형(穗落神型)의 기원 신화로서 새가 하늘이나 다른 성지聖地에서 벼이삭을 물고 와 땅 위에 떨어뜨려 생겨났다는 설이다.


앞서 말한 것 외에도 몇 개의 신화를 더 미루어보아 쌀은, 단순히 다른 농작물처럼 자연스레 태어났다고 치부하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존재가 우리를 살게 하기 위해 곁으로 보낸 선물이라 믿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주식主食의 이름이 무색해지다


주식主食이라 함은 끼니 때면 주로 먹는 음식을 의미하는 말로, 과거 먹을게 풍족하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보리, 밀, 옥수수, 감자, 고구마, 쌀 등을 주식主食으로 했지만, 쌀만큼은 다른 작물과 달리 좀 더 비싼 축에 속했기에 어쩌다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차츰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쌀의 소비가 수월해지면서, "주식主食은 쌀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되었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쌀마저도 다소 뒷전으로 밀려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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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쌀은 여전히 주식主食의 자리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워낙 다양한 음식이 등장하면서 '밥'이라는 것에 중요도가 조금은 떨어지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는 "탄수화물은 다이어트의 적"이라며 쌀과 밀가루의 섭취를 지양하고 단백질 섭취를 지향하고 있으니, 쌀의 비중이 점점 더 위축되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 또한 치킨, 피자, 보쌈, 라면 등 웬만한 음식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편이고, 시간적으로 여의치도 않기에 하루 세끼 중 밥을 한 끼도 안 먹는 날도 있다. 하지만 '가장'을 붙여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은 역시 '밥'이라 자신 있게 말하겠다.


그 이유는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인 '추억'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사 먹던 불량식품과 학교 앞 분식점에서 팔던 막 만들어진 간식거리에서는 밥과 같은 든든함과 행복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저 밥 이외에 모든 음식은 그 순간의 심심한 입을 만족시키기 위한 응급조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다.


지금처럼 퀄리티 높은 여타 다른 음식을 수시로 접했다면 아마 달라졌을 테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그 '밥'이라는 것으로 가족이 모이고, '밥'이라는 것으로 삶을 키워왔지 않은가. 절대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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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다 더 다양한 음식이 나오고 언젠가 쌀보다 더 효율적인 주식主食이 등장한 들, 밥이 주는 추억거리와 건강히 속을 채워주는 듯한 든든함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쌀은 바스러질 것 같은 햇빛이 내려앉은 저녁녘의 침식浸蝕같은 것이다. 나는 쌀만큼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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