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가시셨던 순수함
어린 시절, 선생님은 나와 학우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
우리나라만이 가진 특별함을 말해보세요.
이 나라에 태어나 선조가 물려준 언어를 포함한 자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저 당연한 권리라 여겼던 나에게, 그 권리가 갖는 특별함을 묻는 질문은 어린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지식 적인 면을 먼저 채워 질문을 하는 것은, 답안지를 보고 답을 작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자신만의 신조를 갖고 있으셨던 듯 하다. 무엇도 가르치지 않은 상태에서 최종 질문을 먼저 던지셨다. 그건 단순히 정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닌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하기 위한, 단순히 국어, 수학, 과학 같은 교재가 있는 물리적 교육이 아닌 삶을 지탱할 무형의 힘을 키우도록 하기 위한 수련을 장려했다.
당시 나는 그 뜻을 받아 들이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두 개의 답을 도출했다. 얼마 안되는 기간을 이 땅에 살면서 느꼈던 표면적 아름다움을 입을 통해 뱉어냈다.
우리나라는 채도가 극으로 높아진 여름과 주황빛이 짙게 깔린 가을, 파랗고 하얗기를 수시로 오가는 겨울과 색에 향이 있다면 분홍색은 분명 벚꽃과 같은 향을 낼 것이라는 봄. 이렇게 네 개의 계절이 뚜렷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 계절을 따라 매년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생生을 가진 과일이 열리죠.
두 개의 정답이 도출한 다른 결말
어린 시절 뱉었던 답변은 꽤 오랫동안 정답과 가장 근접한 곳에 위치했다. 정말로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계절이 갖는 고유한 정서를 듬뿍 느낄 수 있었고, 계절과 함께 오고 가기를 반복하는 제철 과일 또한 계절을 기다리는 일 만큼 설레는 일로 여겨졌다.
하나, 세상이 별에 별 것으로 무장하기 시작하면서 두 개의 답은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계절이 더 이상 일 년을 사이좋게 나눠 먹지 않게 된 것이다. 모든 자연 문제의 고질 적인 탓이 되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여름은 더욱 뜨겁게 오래도록 머물렀고, 겨울은 더욱 차갑게 오래 머물렀다. 그에 비해 봄과 가을은 종착역이 된 여름, 겨울과 달리 잠깐 들렸다 가는 정거장이 되어버렸다.
과일 또한 이 변화에 발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계절이 오고 가기를 기다릴 것 없이 연중 내내 원하는 과일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겨울에 딸기를 먹고, 여름에 귤을 먹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계절은 기술에 발전에 의해 암담한 결과에 다 달았지만, 과일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 기다림이 줄고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긍정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시설 재배의 시작
'제철 과일'이란 의미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 했을 때 조금 달라졌다. 과거에는 정말 그 철에만 보고 즐길 수 있어 제철 과일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현재는 그 철에 더 맛이 좋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바로 비닐하우스의 도입이 본격화된 1954년 이후 부터다.
이전까지 농업 방식은 '노지露地'라 하여 지붕 따위를 덥지 않은 자연 그대로 인 땅에 씨를 심어 채소와 과일 등을 재배하는 방식 이었다. 순전히 자연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했던 농업 방식이었기에 시기 별로 바뀌는 기온과 수시로 바뀌는 날씨 탓에 얻어 낼 수 있는 농산물도 다르고 작황 또한 운에 맡겨야 했다. 이런 농업 방식에서 제철 과일이라는 단어도 생겨난 것이다.
매일 매일 다른 날씨로 기분을 드러내는 자연은 늘 인간에게 우호적인 모습 만을 보이지 않았고, 변덕스럽게 공격과 수비의 태세 전환을 반복하며 농부의 작물을 달달 볶았다. 결국, 대부분 농부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가 도입되면서 더 이상 자연의 변덕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비닐하우스의 주 재료인 '비닐 필름'이 기밀성氣密性과 보온성保溫性이 뛰어나다는 게 알려지면서, 농부들은 땅에 온실 형태의 뼈대를 세우고 비닐 필름을 덮는 것으로 햇빛은 투과 하면서 외부의 날씨에서 상당 부분 독립될 수 있는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었고, 보다 안정적인 작물 재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유리 온실보다는 여러 면에서 부족했지만, 비용 대비 큰 효과를 냈었기에 농업 분야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열대 작물까지 재배 가능할 정도로 정교해져 더 이상 계절을 기다릴 것 없이 사계절 내내 원하는 과일과 채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순수함을 대변하다
보통 우리가 '기억'이라 명명하는 것들은 뇌가 형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에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이 미숙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의 유통기한'이라는 턱에 걸려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예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또 다른 기억 방법인 정취情趣가 있으니까.
피부로 느끼고 코로 마셨던 그때의 온도와 내음이 뇌가 형상화하지 못하는 기억을 찾아다 준다. 유년시절을 할머니 손에 커왔기에 특별한 기억은 적으나, 할머니와 살았던 그곳에 가면 갑작스레 찾아오는 손님처럼 기억들이 반갑게 머릿속에 찾아 든다. 할머니의 비닐하우스가 그 기억 중 하나이다.
지금은 비닐하우스의 잔재만 남은 빈터지만 그 시절 겨울 아침이면 쌓여있는 눈을 치우기 위해 할머니는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맨 다음 긴 빗자루를 챙기고 나가 하우스 지붕에 쌓인 눈을 걷어내셨고, 매일 아침 하는 조회 처럼 하우스를 만지지 말고 눈으로 보라는 당부의 말씀을 빼 먹지 않을 만큼 하우스를 아끼셨다. 아마, 그 안에 손주 다음으로 아끼는 애기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들이 무사히 이 겨울 동안 잘 커야 우리 성배 맛있는 거 만들 어 줄 수 있으니까, 예쁘게 잘 크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우리 성배도.
새 집에 못질 한번 하지 못하는 가녀린 마음처럼 할머니는 당시에 지은 지 얼마 안된 비닐하우스를 매일 매일 그렇게 관리하셨다. 새 차 마냥 먼지를 털고, 자식 새끼 마냥 그 안의 작물에 정을 쏟으셨다.
하우스는 내가 몰랐던 할머니의 가장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잠들 때면 신경 쓰지 못할 밤 동안 하우스의 안위를 소녀처럼 걱정하셨고, 서둘러 감은 두 눈으로 오매불망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을 내비치셨다. 새벽이 밝아 오면 서둘러 나가 하우스를 돌며 무사한 것을 확인하면 그제서야 해맑게 웃으시던 할머니.
매번 시골에 가면 보이는 터만 남은 하우스에서 지금보다 더 꼿꼿한 허리와 주름이 덜 했던 얼굴로 미소 지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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