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작이 창대하고 끝은 미약해진 것일까.
무관심보다는 유관심이 사회의 온도를 높인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기심보단 이타심이 사회를 더 단단하게 한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관념이 당신과 내가 가장 순수해야 할 감정에 까지 파고들어 관여하는 게 맞는 것일까? 대체 그러한 자격은 어디서 얻어야 사랑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사랑에 값어치를 메기며 사랑의 높낮음을 논할 수 있는 것일까.
왜 그의 사랑은 시대에 뒤쳐진 기능을 다한 물건이 돼야 하는 것일까.
이젠 사랑이라는 감정에 수학의 해답과 같은 개념이 붙어 다니는 것 같다. 이전까지 문학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저자의 심경을 추론하는 풀기 힘든 난제 같았던 사랑이, 마치 긴 세월을 논한 끝에 정답에 다다른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SNS를 통해 하루에도 수 천 개에 달하는 '이것이 사랑이다'라는 해답 같은 글들이 쏟아져 나올 때 언젠가, 그중에서도 "나의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야" 말하는 듯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꽤나 높은 좋아요 수와 함께 상당수 달린 댓글들은 하나 같이 부러움을 내포한 온갖 칭찬과 시기 비슷한 말들로 빼곡했다. 자신의 연인을 태그 한 사람들과 짝사랑이라도 하고 있는 듯 "나도 그와 그랬으면.."이라는 소원 같은 말들까지.
모두 하나 같이 자신의 사랑이 다소 정답에 빗나갔다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관념이 수백수천 명을 관여하니 모두가 오답이라 말하는 모양새였다. 이것은 명백히 잘 못되었다. 자신의 개성은 그리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사랑은 해답이 있다는 듯, 사랑의 개성을 등한시하고 있었다.
나는 사랑 중인 지인들에게 그녀 혹은 그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말해 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사랑'을 처음 시작하게 했던 계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 보인 건 단 하나였다. 사랑으로 녹아버릴 것 같은 미소.
그는 그녀의 긴 머리에 반했다고 했다. 긴 머리가 흩날릴 때마다 뺨을 스치는 순간순간이 화보의 한 장면처럼 멈춰 보였고, 그때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안경 쓴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안경을 쓰고 시시한 책에 몰두해 말 한마디를 하지 않던 그의 무심함이 든든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나의 사랑도 하얀 피부와 한시도 내려가지 않던 입꼬리, 밋밋한 대화를 장식하는 손짓으로 이 마음에 싹을 틔웠었다.
그들도 나도 어느 하나 사랑이라는 공통된 감정에 동일한 이유는 없었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순간에 의해 두각을 드러냈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있었다. 예측할 수 없기에 '운명적 사랑'이 존재하고, 누구 하나 같지 않기에 "진짜 내 짝은 따로 있다"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생겨난 것이란 걸.
그런데 어찌 시작이 창대하고 끝은 미약해진 것일까. 그리 반짝 거리던 시작이, 어느 하나 비슷한 것 없이 시작된 수 만개의 사랑이, 작은 답 하나만을 열망하고 있다. 우리의 대부분은 간과하고 있다. 사랑은 유일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닌 '다답多答'속에 하나를 관철하는 것이란 걸.
사랑에 답은 없다. 그건 즉, 모든 것이 답이 될 수 있는 포용적 단어라는 뜻이며, 어떠한 관념도 개념도 신념도 관여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개인의 사랑에 '타他'를 비교하지 말기를.
틀린 사랑은 없다. 하나 하나가 다, 다른 사랑이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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