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달콤한 너
가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가을에 열리는 녀석은 마치, 어린 시절 내가 사고를 칠 때면 "넌 대체 누굴 닮은 거니"라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꾸중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을 온통 노란색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모호한 색으로만 천지에 깔아두는 가을에, 유별나게 붉은 색을 띠는 사과는 어머니의 꾸중처럼 가을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가을에 태어나던 녀석들은 매번 늠름하게 자라 어머니께 말한다.
가을은 사실 매일 어둠이 내려 앉기 직전에 태양 근처를 메운 살점 같은 구름들을 붉게 물들이고, 계절이 익어갈 수록 초록의 산세도 붉게 물들여요. 그토록 삐뚤어 보였던 나는 당신 곁에서 자라, 당신을 이리도 닮은 근사한 놈이 되었습니다.
감홍
가을은 다양한 사과가 열리는 계절이다. 추석의 식탁에 올라가는 홍로를 시작으로 붉은 옥과 같은 홍옥, 붉게 물들지 못한 잎사귀를 닮은 시나노 스위트와 빛깔이 고운 양광, 마지막으로 11월부터 수확하기 시작하면 연중 내내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머무는 부사(후지)까지, 모두 가을에 열린다.
그런데 사실 11월에 부사가 수확 되기 전에 먼저 따는 사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재배되는 '감홍'이란 사과이다. 이 사과는 일본 품종의 부사보다 향과 식미가 모두 뛰어나고, 상온에서 약 60일간 보관을 해도 맛의 변화가 가장 적은 우리 나라 품종의 사과이다. 재배 이력 또한 1992년에 농업진흥청에 의해 최종 선발 되어 키우기 시작한 만큼 결코 짧지도 않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품종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말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맛이 아무리 뛰어난 품종이라 해도 키우기가 까다롭고 저장 기간도 짧다면, 농부와 소비자에게 사랑 받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뛰어난 맛의 감홍이 부사보다 덜 알려진 이유
단 하나, 바로 내구성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사과가 부사가 된 이유는 타 사과에 비해 월등한 저장 기간과 수월한 재배 난이도에 있다. 사과는 특성 상 시설 재배가 어려워 보통 가을에 수확하면, 저온 저장 및 스마트 처리를 하여 이듬해 가을 직전까지 차등 출하하는 것으로 사계절 내내 균등하게 보급이 이루어지게끔 하는데, 이것을 가능케 품종은 부사가 유일하다.
수세가 강하고 저장 기간 또한 180일로 타 품종에 비해 오래가니, 농부의 입장에선 유통에 용이하고 재배도 상대적으로 쉬운 부사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반면, 감홍은 부사보다 평균 1~2brix가 더 높고 과육도 치밀해 식감까지 좋지만, 과실의 칼슘 공급의 부족으로 생기는 '고두병'에 취약하고 저장 기간도 부사에 비해 60일 가량으로 짧아, 재배를 가장 적게 하는 품종으로 전락했다. 현재까지도 가을에 한시적으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소비되는 매니아 사과로 치부 되고 있다.
감홍의 도약
하지만 최근 농업진흥청 소식에 의하면, 저장성 보다는 고두병에 의한 재배의 까다로움으로 기피 되었던 감홍의 단점이 기술 개발을 통해 극복이 가능해 졌다며, 앞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나라 사과 '감홍'의 홍보에 나설 것이라 한다.
부사처럼 보편화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홍로처럼 대중화 되는 날은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감홍을 맛보다
감홍의 이름 중 '감'은 단감에서 쓰이는 '감'자와 동일한 '甘 달 감'자를 쓸 정도로 당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감홍을 보면 과색에 노란색이 서려있다. 하나 그만큼 완벽한 홍색이 아니기에 식감 면에서는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감홍의 외형은 홍로나 양광 같은 특유의 선홍빛도, 홍옥 같은 강렬한 인상 없는 모호한 생김새를 가졌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더 궁금하게 만들기도 한다. 타 품종과 다른 차이를 보이는 모습은 평범한 사과 맛과는 다르다고 넌지시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작은 과도로 주먹보다 좀 더 큰 감홍을 얇게 깎아 내렸고 곧, 홍로 보다 약간 더 짙은 노란색의 벌거벗은 감홍을 완성했다.
칼집을 두 번 내는 것으로 한 조각을 크게 감홍의 몸통에서 떼어내 입에 넣었다. 단단한 막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순도 높은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달고 달아 음절 두 개 모두에 '달다'는 뜻을 쓰는 단감 보다 더 달콤했다. 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차가워진 과육은 달콤함을 배로 뱉어냈다. 기분 좋은 소리와 달콤함. 이 두 가지가 한 번에 입안에서 움직이니, "맛있다"라는 말보다 "이래서 감홍이구나"라는 생각을 먼저 들게 했다.
주먹보다 좀 더 큰 감홍 하나는 3천원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타 사과보다 더 비싼 가격이었으나, 변명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 사진 'unsplash' (위 사과 사진은 모두 '감홍'이 아닌 다른 품종의 사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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