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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별, 제주는 우주

by 전성배

별은 그 자체만을 두고 예쁘다 말하지 않는다. 수십수백의 빛이 한데 모이면 서로가 서로를 가리어 알아차릴 수 없는데, 별 또한 그것들만 모여있는 곳에서는 제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에, 목숨보다 더 먼 거리를 두고 뜨문 뜨문 떠있을 때야 말로 비로소 별의 빛을 '희망'이라 말할 수 있고, 형태도 없는 빛을 어여쁘다 말할 수 있다.

제주는 바람이 아주 많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키를 헤아릴 수 없는 바람을 유일하게 막아 세우는 건 저 멀리 구름처럼 희끄무레한 한라산이 전부였다. 나는 섬의 중심부에 장승처럼 솟은 한라산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섬의 끝자락을 거닐었다. 서해 쪽이었을 것이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바람은 내내 옷과 머리카락을 괴롭혔다.


짓궂은 바람을 가로지르며 티끌조차 보이지 않는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하염없이 걸었다. 오른손은 카메라의 스트랩을 돌돌 감은 채 바디를 움켜쥐고 있어, 어렵지 않게 순간순간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다. 무심히 셔터를 눌러도 장면은 근사하게 담겼다. 더없이 황홀했다.


하나, 곧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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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한반도는, 그 마저도 몸통뿐이 거닐 수 없는 이 대한민국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것들 뿐이다. 언젠가 파주에서 먹었던 한잔의 커피 맛은 부산에서도 즐길 수 있었고, 가평에서 보았던 기와 몇 장이 이 빠진 듯 없던 지붕의 집도 전주에서 볼 수 있었다.


육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듯한 제주의 땅도 분명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은은한 색채를 뿌리며 저무는 태양도 바람에게 대들며 굳건히 자리 잡은 부둣가의 카페도 육지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어찌 나는, 어찌 우리는 그곳에서 욕심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해하고 한시도 주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일까. 육지에서는 땅만 보며 걷던 이들이 태반이었건만, 그곳에서는 어느 한 명도 땅을 보며 걷는 이가 없었던 것일까.


사방에서 들이치는 바람을 쳐내며 풍경과 함께 계속해서 스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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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밤을 머물렀던 숙소에서 만난 몇몇의 사람들은 성별도 나이도 달랐지만, 모두 '제주'를 대면한 감상 하나만을 한참 동안 풀어냈다. 정착을 위해 제주에 왔다는 멋스러운 차림새의 남성, 장기 여행을 위해 두 달째 머문다는 어린 여성, 전국을 다니고 있다는 대범한 여성, 친구와 군 휴가를 나와 뜻깊은 시간을 위해 방문했다는 남성들에 이르기 까지. 한 명 한 명 경청과 발언을 맞바꾸며 미소 짓던 그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별이라, 이 바람 한점 막아 세우는 것 없는 작은 섬 제주를 그 별이 박히는 우주라 생각해 보았다.


너무 많은 빛이 한데 모이면 서로를 가린다고 말했다. 이는 빛에만 국한되지 않고 장소와 물건, 사람에게까지 두루 통하는 이치와 다름없는데 '제주'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레 웃으며 꿈을 야기하는 그들을 보며, 서로를 가리는 빛의 군락 속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제 몸의 빛조차 증명할 수 없을 만큼 환한 곳에 있던 그들과 지극히 다를 바 없는 나. 우리는 이 곳에 닿아서야 진정 자신이 별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연고지 없는 이곳에 애착을 갖고, 쟁겨 놨던 꿈을 다시금 꺼내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은 한 명 한 명이 귀한 존재라는 걸. 우리는 진정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원하는 것이었다. 답만이 아닌 그 답에 접근할 수 있었던 풀이를.


우주가 별이 별일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어주듯, 그들과 나에게 제주는 우리가 별임을 알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는 제주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빛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 또한 우주일 것이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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