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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글쓰기도 사랑처럼 거리를 요한다.

by 전성배

요즘은 글쓰기가 도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타자를 두드리는 일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고 본능적인 일이거늘, 이 손으로 써내릴 이야기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첫머리를 시작하는 일까지는 제법 쉽다. 마치 처음 몇 차례는 호기롭게 퍼내는 삽질 같은 느낌이다. 하나, 삽질을 중반 정도까지 하니 점차 힘이 빠져 흙을 퍼내는 양도 줄고 집중력도 흩트러져 삑사리를 내는 것처럼, 요즘 내 글쓰기는 초반에 호기롭게 퍼내는 삽질과 똑같다.


'주제'라는 선을 정해두고 글이라는 삽질을 시작하지만, 선을 벗어나 삑사리를 내는 것처럼 주제를 겉돌기 시작한다. 그럼 상당한 양을 써냈던 글을 또다시 휴지통에 버리고 만다. 그렇게 쌓인 글은 이미 휴지통을 채우다 못해 넘치고 있다.

모니터에 앉을 때면 고개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다. 화면은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어 나를 채울 것이냐"며 보채고 있으나, 가사 하나 없는 경음악으로 감정을 말랑하게 해보아도, 가장 슬픈 가사들로 코끝을 자극해 보아도 도통 새로운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문득 "사랑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말이었다. 매일을 만나며 얼굴을 비추고 몸을 비비며 사랑을 불태우는 연인과 먼 거리 탓에 이따금 시간을 두어 만나는 연인. 이렇게 두 부류를 비교하며 최종 결론을 지어 냈던 답으로 기억한다.

두 부류의 연인들을 긴 시간을 들여 관찰한 결과 매일 만난 연인보다 가끔씩 만난 연인이 더 오래간다는 결과를 토대로 한 답이었다. 이 이야기를 접했을 당시에는 "참 당연한 결과를 연구를 통해 증명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완전한 답은 아니나, 나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연애가 더 깊은 사랑을 관철한다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 또한 사랑하는 이와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고, 그의 모든 날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내 곁에 두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과 그의 마음이 한치도 다르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러한 연애는 늘 차갑게 식어갔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며 더욱더 그의 곁을 지켰으나, 익숙해지는 것만큼 거만해지는 것이 없었고, 두근 거림은 금세 죽어 설렘을 고갈시키고 말았다.


그에 반해 거리감을 유지했던 연애는 늘 애잔했다. 매일매일 무엇을 할지 고민했던 날들은 금세 자원의 고갈을 불러왔지만, 거리를 두고 만나던 연애는 매일 목소리로만 닿을 수 있던 호흡으로 사랑에 늘 촉촉한 물을 적시었고, 어쩌다 만나는 날이면 하고 싶은 수많은 것들로 인해 하루가 부족할 정도였다.


자연히 하루 일 분 일 초를 온전히 사랑하며 만족스러운 하루를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에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글쓰기 또한 사랑에 필요한 거리를 똑같이 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는 매장된 자원을 쓰는 것과 같았다. 자연과 다른 점이라 하면 이 자원은 고정된 물량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다시금 채울 수 있는 가변적 성질을 띄고 있다.


글쓰기는 매일 짧게라도 써가는 것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무미건조해진 감정과 관계에서 매일 단어를 캐내어 문장을 정제하고 흰 화면에 쌓기를 반복하면, 점차 고정 자원은 고갈되어 새로운 문장들은 더 이상 정제될 수 없었다.

결국, 글도 사랑처럼 거리가 필요했다. 거리를 두어 새로운 자원이 보충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했다. 그것을 조급한 마음과 욕심으로 안일하게 여겼다. 거리를 두는 방법 또한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듯이, 거리를 두는 방법 또한 새로운 생각과 문장의 정제를 도울 수 있었다.


사랑과 글쓰기는 삶의 이치가 종국에는 하나를 향한다는 말처럼 같은 맥락을 가졌다. 우리는 조금 거리를 둬야 했다. 그 거리만큼 서로를 더 깊게 고찰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와 같이 글이나 사랑을 해내감에 정체가 왔을 때, 조금은 거리를 두길 바란다. 사랑을 빚고 문장을 써내는 일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보이는 답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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