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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손길과 포옹

사랑은 만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by 전성배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하며 살까. 부모님 세대에는 그 말만큼 낯간지럽고 어려운 말이 없다고 하셨다. 그보다 한 세대 더 위에는 그 말이 철없고, 불순하다고 여기기도 하셨단다. '사랑한다'는 간편하고 저돌적인 단어가 갖는 감정이 과거의 시대는 감추고 드러내 보이면 안 되는 약점처럼 치부되었던 모양이다.

현세대와 구세대의 수많은 차이점 중 가장 선두를 달리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이 갖는 막중한 무게감을 아무렇지 않게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감정이란 탑을 쌓아 꼭대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달아두는 조심스러운 이도 있으나, 단순한 우호적 감정에까지 조급함이 앞서 사랑한다 말하는 것으로 서둘러 상대에게 자신의 덜 여문 진심을 전하는 이도 있다.


현세대의 우리는 이 한마디를 참 어렵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결과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 '궁예'처럼 관심법이 있지 않는 이상, 상대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받아낼 수 있는 기반과 내 마음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해'만큼 편리하고 확실한 건 없으니 말이다.

그저 조금 다른 면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사랑을 과거에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어찌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는지.


그건 의외로 한 여인의 애정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제주를 방문한 후에 돌아오던 아침 비행기에서의 일이었다. 7시 5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나의 자리는 비행기의 꼬리 쪽이었고, 남들보다 일찍 탑승했던 터라 여유롭게 짐을 위에 올려두고 복도 쪽 좌석에 몸을 앉힐 수 있었다. 워낙 이른 시간이었기에 바로 눈을 감고 싶었지만 내 왼쪽 편에 있던 두 개의 좌석이 채워진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눈을 한번 떠야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옆의 좌석이 채워질 때까지 주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빈 좌석들이 하나 둘 채워지고 거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내 옆 두 자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주인은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딸과 사십 대 초반 정도의 엄마였다.

그 두 사람이 앉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등받이에 편히 기댔다. 몇 분 후에 기체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을 청하려는 순간, 작은 대화 소리가 들려 왼쪽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창문 옆에 앉아있던 여자 아이는 얼굴과 말의 주인이 다른 듯, 다른 감정을 내보이며 말하고 있었다.


기대에 찬 얼굴과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 비행기는 안전하겠죠?"라고.


질문에 아이와 달리 어머니의 말과 표정은 하나가 되어 말했다. "그럼, 걱정 마렴"


비행기는 활주로 위에 위치하더니 서서히 바퀴와 터빈을 거세게 굴렸다. 기체는 곧바로 진동하며 점차 앞머리를 시작으로 몸을 붕 띄었다.


'쿵'

소리와 함께 아이는 입을 다물며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큰 몸체가 격하게 움직이니 불안했던 모양이다. 불안한 표정은 그대로 어머니의 얼굴로 향했고, 어머니는 말없이 가장 익숙했던 미소로 아이의 손등을 꼭 쥐었다.


나는 그 순간 뭔지 모를 안도를 느꼈다. 익숙한 이 안도감. 언젠가 분명 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기억의 편린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기 시작했다. 곧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수년을 만났던 한 여자의 말 없는 포옹에서 느꼈던 그 안도와 겹쳐졌다. 가슴을 울컥하게 할 만큼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설레고 고마웠던 행동.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말 뿐인 언사는 기억되기 힘들고, 현실화되지 못한 채 말만 이어간다면 만용이 되기 일 쑤라 조언하는 이 말은, '사랑'을 하는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도 "백 마디의 사랑해 보다 한 번의 따뜻한 손길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바꿔 쓸 수도 있다.


하나, 이 말 또한 반쪽짜리 정답이다. 사랑은 참으로 어려운 감정이니 말이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말에도 강한 긍정을 드러낼 수 있고 때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의 행동이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의견에도 강한 긍정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세대는 늘 변하기게 현시대를 이끄는 우리의 세대도 다음 세대에게 기약해야 할 때가 온다. 과거에는 어려웠던 감정인 '사랑'이 현시대에는 그저 대중적인 단어로 보편화 되었듯, 다음 세대에는 또다시 생각지 못한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지 모른다.


나는 그저 작게나마 바랄 뿐이다. 조금은 그 무게를 다시금 자각할 수 있기를. '썸'이라는 바람 같은 감정과 사랑이 동등한 위치를 점하지 않기를, 과거에는 말보다 서로의 간소한 행동에도 사랑이 진득하게 배어 있단 걸 알 수 있었 듯이 , 적당한 행동과 말이 고루 어우러져 만용적 사랑이 되지 않기를.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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