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같은 나이에 도달한다.
봄과 함께 입꼬리를 트는 꽃 봉오리,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가장 먼저 빛나는 사과의 한쪽 과피, 억세다 싶을 정도로 파릇파릇한 다수의 잎사귀.
젊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기를 지녔다. 젊음 하나하나는 마치 태양과도 같다. 오래된 우리는 팔리지 못해 햇빛 아래 며칠 째 걸린 옷가지 같다. 진하고 멋스러운 색을 가졌던 우리는 점점 색이 바래지고, 점차 우리는 열악해진다. 우릴 보는 눈길이 더욱더 줄어져 가니 말이다. 새롭게 걸리는 옷가지와 그것들이 발산하는 선명한 색들은 그림자를 만들어 우리를 점차 가리기 시작한다.
젊은 너는 태양과 같은 선명한 생기로 우리를 드리웠다. 부럽고 우러러졌다. 눈빛은 우상을 바라볼 때와 같은 형태로 빚어지며 당신에게 향한다.
처음 마주친 너를 보았을 때, 그녀와 나는 가장 점잖은 어투로 말했다. '어려서 부럽다'
연어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이 단출하게 올라가져 있는 상 앞에 친구와 나는 마주 앉았다. 결혼하는 친구 녀석의 남편을 보고 온 직후에 도착한 동네 선술집 안이었다. 여백이 훨씬 많은 상 위에는 결혼하는 친구의 미래를 어쭙잖게 걱정하는 이야기와 부러운 이야기를 널브러뜨리며 밤을 익혀가고 있었다.
그러다 친구의 동생이 이 자리를 잠시 들리겠다는 연락이 왔다. 긴 머리와 말 끝을 장식하는 손동작들이 아른거릴 정도로 귀여운 동생 L은 자신과 가장 친하다는 여동생 K도 함께 데려가겠다는 말을 함께 덧붙였다.
잠시 후 검은색 롱 패딩과 굽 없는 단화, 긴 양말과 목도리를 맨 모습이 똑같은 여동생들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 다면 K는 검은색 긴 머리와 남색과 흰색의 무늬가 질서 있게 그려진 목도리를 매고 있었고, L은 갈색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베이지색 목도리를 매고 있었다.
흰 피부로 인해 더 진해 보이는 검정머리를 목도리 위로 치맛자락처럼 풀어헤친 K는 흰자와 검은 눈동자의 경계선이 훤히 보일 정도의 큰 눈으로 친구와 나를 응시하며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가장 순도 높은 목소리로 인사를 전해왔다. 그녀는 21살이라고 말했다.
나이를 들은 친구와 나는 순간 놀랐다. 중·고등학교 두 개를 합친 만큼 어린 그녀를 보며 한 번의 차이를, 꽤나 오랜만에 보는 깨끗한 미소에 두 번의 차이를 느꼈다. 우리는 힐끗힐끗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내내 큰 눈을 고수한 채 L과 나의 친구, 그리고 나를 계속해서 응시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유지했다. 그리고 곧 L과 K는 꾸벅 인사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불과 20분도 되지 않는 짧은 만남이었으나 세월의 차이 때문인지, 오랫동안 본 적 없는 미소 때문인지 찰나는 강렬하게 남은 채 우리의 대화에 그리움을 드리우게 했다.
"와 진짜 어리다. 젊다. 젊어서 부럽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 이 말을 뱉으며 지난날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떠했을까"라는 뻔한 답의 질문을 스스로 읊조리기도 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새삼 우리도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에.
한데, 유독 친구는 아련한 어투를 지우지 못했다. 서글픈 눈빛이 순간순간 비치는 것이 눈에 훤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무엇일까. 젊음이 갖는 진정한 뜻과 그것에 대한 정의를 무엇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잠시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들으며 윗사람들과 부모님, 가까운 형들과 누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와 그녀도 그들에게는 K와 같은 생기를 뿜어내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젊음은 상대적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옛 속담을 한 음절만 바꾸어 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말이다.
"남의 젊음이 더 커 보인다"
우리가 K에게 느꼈던 생기를 우리 또한 흘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더 윗 나이 때에 머물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도, K가 내뿜던 생기를 또 다른 형태로 뿜어내고 있을지 모른다. K로 인해 느꼈던 젊음의 그리움을 윗사람들 또한 우리를 통해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되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특히 부모에게는 더욱이 말이다. 부모는 늘 자식의 젊음을 우러러보며 살아간다. 앞서 말했듯 젊음이 상대적인 만큼 모든 생명은 일정하게 삶을 내딛는다. 모두가 내딛는 보폭과 속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다.
부모가 겪은 한 때의 젊음을 우리도 같은 시기에 도착하여 이어가고 있고, K가 겪는 젊음을 우리는 한차례 겪은 바 있다. 그리고 K는 우리의 지금을 수년 후에 도달할 것이다. 생명은 움직이지만 나이는 부동적이니, 모든 생명은 동일한 젊음을 한차례씩 겪게 된다.
그러니 그녀의 젊음을, 생기를 슬픔 따위로 가득 채워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직 그녀가 닿지 못한 현실을, 조금 더 성숙한 세상을 향한 시선을, 좀 더 진중한 이야기를, 보다 단단한 버팀목을 지니고 또 갖고 있으니까.
이것은 어쩌면 생기와, 젊음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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