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한다면
회색의 벽과 미의 여신이라 불리는 누군가의 치맛자락처럼 늘어뜨려진 하얀 천, 짙은 갈색의 의자와 세트를 이루는 테이블, 동양화만이 뽐내는 여백의 미를 노골적으로 차용한 서양적인 인테리어 속 수많은 빈 공간들.
요즘 자주 찾는 카페의 특징이다. 멍하게 앉은 누군가를 표방한 듯, 온통 돋보이는 색 하나 없는 흐리멍덩한 색의 조합으로 꾸며진 카페 안은, 장식이라고 해봤자 초록의 선인장이 전부이며 한 켠에서 돌아가는 레코드 판이 유일하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참으로 좋아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아지트 같은, 자신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장소를 알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집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테니 그 답안지를 훔쳐본 듯한 답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에게는 어느 공간이 평안을 가져다주는지.
나는 앞서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장소의 특징을 직접적으로, 그곳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말했다. 나에게 평안이란 고요, 적막, 안락함의 의미를 내포한 단어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이 생각은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 혹은 지인, 연인을 만나는 자리는 '타협의 장'이라 할 만큼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 적당한 답을 추려야 하는 가정치척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주도적으로 말하던 나는 이기적이었다. 물론 친구와 연인이 된다는 의미는 어느 정도 서로의 성격과 취미, 방향성이 비슷하기에 성립되는 관계라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을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텐데.
좋아하는 음식이 같고 서로의 가치관이 같다고 한들, 서로가 같은 장소에서 무조건 적으로 동등한 평안을 갖는 건 아니었다. 때론 누군가에게는 북적함, 소란, 활기가 있는 곳이 평안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공간뿐만이 아니다.
음악 스타일, 끌리는 글의 장르, 좋아하는 영화가 다르 듯 우리는 그저 비슷할 뿐 똑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짧은 삶이니 남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먹고, 입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이 결코 모든 상황 속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매번 자기 자신이 절대적이어서는 안 되었다. 친구도 연애도 결혼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그러니 다시금 생각해보자.
매번 나를 따라 주었던 친구 혹은 연인은 참으로 나를 사랑해주었던 모양이다. 가끔씩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과 곳을 보며 짓던 그의 웃음을 지나치는 사람을 보듯 흘렸다는 던 나를 묵인할 만큼.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면 그와 같은 곳에 서서 생각해보자. 당연한 이 말을 우리는 꽤나 번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평안이 그의 전부를 닿을 수 없음에도 웃어주던 그라면, 때론 그의 평안을 묻고 수긍하길 바란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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