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人生無常, 인정의 단어
때론 쌓이는 것과 흘러가는 것의 구분이 모호해질 때가 있습니다. 본인은 쌓아가며 성숙과 성장을 동시에 이뤘다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보지만, 쌓인 것 없는 허허벌판을 마주했을 때의 공허감이 바로 모호해지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365일을 경계로 1년씩을 끊어 쌓아둔 날이 수십 년인데, 정작 돌아본 곳에 남아 있는 건 지나는 바람 하나 막을 것 없는 들판이라는 사실에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그땐 쌓이는 것과 흘러가는 것의 모호를 따질 것 없이 상실감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니 묵은해를 보낸 다는 건 역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닌 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어땠을까요. 해의 마지막을 기리는 12월은 겨울을 감싸는 눈이 오는 날 보다 더 반가웠고, 식어버린 찬 바람은 개운하기만, 가사상태 빠져버린 마른나무들은 운치 있기만 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묵은해와 새해라는 개념은 인간들에 의해 정의된 것일 뿐, 무의미한 구분임에도 어릴 적 우리는 묵은해와 새해를 잘도 구분 짓고 아쉬움 없는 온전한 기대감에 빠졌었습니다. 떠나보내는 것과 맞이하는 것에 동일한 감정을 갖다니..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과 성장하는 것에 오직 기대와 선망에 취했을 때가. 물론 지금도 동일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밝은 기대감이 아닌 색이 어두운 불안과 아쉬움으로.
겨울은 사계절 중 유일하게 '미련한 계절'이란 수식어를 갖고 있습니다. 12월부터 2~3월까지 이어지는 계절은 지난해와 새해에 동시에 걸쳐진 유일한 계절입니다. 이미 지난 시간을 애처롭게 붙들고 있는 계절의 모습은 왠지 남는 것 없이 흘러가버린 시간에 허무를 느끼는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계절의 모양을 만들고 이름 지었던 그는 이미 알고 있던 게 아닐까요? 언젠간 우리들이 느낄 흘러가는 것의 아쉬움과 슬픔을. 그것을 계절로 위로하려던 것은 아닐까요? 태동마저 멈춰버린 겨울을 지난 것과 맞이 하는 것에 동시에 걸쳐 둠으로써 알리려던 것은 아닐까요?
화火나 염증은 쌓일수록 병이 되는 것처럼 시간 또한 다를 바 없다고. 쌓임 없이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말하려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덧없음을 뜻하는 말인 인생무상은 경쟁과 욕심, 금전,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 단지 긴 삶 속의 찰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해탈의 단어이거나, 숱한 무너짐 속에 손을 놔버린 망연자실한 슬픈 단어라고 하지만,
진짜 쓰임새는 나와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을 때, 내가 흘려보내는 것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고여 성장을 돕는다는 걸 자각했을 때, 비소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쌓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차이와 쌓아 두는 것과 흘려보내는 것의 경계는 없음을 받아들일 때, 쓸 수 있는 '인정의 단어'가 아닐까요.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INSTAGRAM / PAGE / FACE BOOK / NAVER POST (링크有)
※ 詩와 사진 그리고 일상은 인스타와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