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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권력의 상실

특별해지는 것과 보통이 되는 것

by 전성배 Jan 05. 2018

의지와 끈기 혹은 인내심과 같은 감내 해야 하는 감정들이 뭉그러지는 날이다. 한껏 얼때로 얼어 '땅땅'소리를 내야 하는 모든 것들이 의외로 부드런 감촉을 유지하는 요즘. 그래, 겨울이지만 그 답지 않은 따뜻한 햇빛이 오후 내내 주변을 범람하고 있다. 그토록 추울 거라 했던 겨울은 작년보다 더 자기 말을 번복하고 있다.


움츠러들기 직전까지의 찬바람만 불어오는 오후 무렵, 나는 한적한 길가를 걸었다. 사람만 없을 뿐이었지 높은 건물이 즐비했고 바람은 가득했고 풀들이 소리를 지르던 곳이었다. 한적 하나 소란한 곳을 걷는 동안 한 아이와 젊은 엄마의 산책을 목격했다. 목적지가 비슷한 건지, 발이 가는 데로 걷는 것인지는 몰라도  앞서 걷는 모녀는 꽤 오래 내 앞을 지키며 걷고 있었다. 자연스레 목격은 관찰로 바뀌었다. 가능한 시간까지 아장거리는 아이의 걸음과 수호하듯 걷는 어머니의 느림을 보았다.


아이에게는 특별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차림새와 평범한 생김새, 그 맘때 낼 수 있는 작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나의 눈에는 그저 또래의 아이들 틈에 섞여있다면 발견하지 못할 평범함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 눈에는 절대적인 특별함으로 뭉쳐져 있음이 절절히 보였다. 자신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가 모든 보통의 모습을 특별하게 탈바꿈시키는 것만 같았다. 난 모녀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행했던 사랑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는 몇 차례 사랑을 경험했다. 부모나 친구를 통해 느꼈던 것과는 다른 색의 이 마음은, 그(그녀)를 품었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의 생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 특이한 감정의 생성과 소실을 수차례 반복하며 세월을 쌓아갔으며, 반복되는 과정 속에 특별한 존재에서 보통의 존재 혹은 그보다도 못한 타인이라는 신분으로의 강등을 경험했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동시에 '권력'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과 권력욕은 비슷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경험하지 못한 권력은 당연히 그것에 대한 갈망과 소유욕을 알 수 없다. 비단 권력만이 아닌 세상의 순리가 그렇다. 가져보지 못한 것에는 갈망도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한번 가져본 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한번 갖게 된 권리나 권력, 신분을 손에 쥐었을 땐 놓치고 싶지 않은 법이다. 어떻게든 꽉 쥐어 지켜내려 한다. 그 정도로 제 손으로는 놓기 힘든 법이다. 그러니 강제로 빼앗거나 가등시켰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특별했던 내가 보통의 사람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특별했던 내가 보통의 내가 된다는 것은 크나큰 상실감과 조우하게 된다. 권력과 사랑은 이처럼 욕심과 상실이란 이름 앞에 같은 색을 띤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있어 유일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이어 달리 듯 계속해서 사랑을 붙여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내가 다시금 특별해질 수 있는 선택.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누군가를 또다시 만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권력을 취했던 이가 다시금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과 지키기 위해 버티는 것처럼. 한번 느꼈던 그 성취감에서 다시는 벗어 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언젠가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사랑과 권력으로 갖는 만족은 순간일 뿐이니, 너만의 '무엇'인가를 찾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사랑과 권력은 찰나일 뿐인 소모적인 행위로 치부하라는 뜻은 아닌, 그 말 안에 있는 사랑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을 스스로의 특별함을 찾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그(그녀)의 세상을 맞다 뜨리며 그 안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된 것에 행복해하고 자신감에 차게 된다. 사랑이 전부라 말하는 이는 그것으로 행복을 정의하고 살아가는 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 두어 바라본다면, 내가 그에게 특별한 만큼 나 또한 나의 세상에 그를 특별하게 둔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생만큼의 세상을 갖고 있으니까. 감정이 양방향으로 이어 나갈 때 생성되는 것이 '사랑'이듯, 그가 나를 특별하게 하는 만큼 나 또한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단 사실을 잊지 말자.


언젠가 그가 나를 보통으로 만들었을 때, 나 자신도 내 세상 안에서 그를 퇴출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우리는 모두 보통이나 내 세상에서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니. 이것은 위로나 배려 같은 따뜻한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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