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쓰고 그리고 만들었던 이유
언젠가 그림을 그리던 다빈치 음악을 만들던 베토벤, 건물을 짓던 리차드 로저스와 상상을 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예술가들이 창작을 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다. 있는 것을 누리는데 그치지 않고, 왜 새로운 것을 그리며 만들고 지었던 것일까에 대한 의문.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을 기억한다. 어쭙잖은 시를 유선 노트에 연필로 적어 내리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라, 처음으로 난폭하게 주입 당하던 분주한 감정들을 갈무리해 적어 내렸던 날. 그날은 달빛이 아직 꺼지지 못한 새벽의 끝 무렵이었다. 잠을 잔 듯 안 잔 듯한 몽롱한 상태로 눈을 뜬 새벽은 몇 시간 후면 장사를 위해 나가야 하는 시간이었기에 억지로 라도 다시 잠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었다. 하지만, 한번 달아난 잠을 다시 찾아오게 하는 일은 호락호락 않았고 결국,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날 그 시간은 의도치 않은 사색에 빠지기 충분했고, 나는 불안감 하나를 끄집어 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끝나게 될까"
수 년 전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장사 일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었다. 시간이 전부 한 곳을 향하니 자연스레 모든 생각들도 <장사>에 점철되어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때. 그 새벽은 나의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생을 살지만 다른 삶을 꿈꾼다. 똑같이 주어진 생에서 특별한 것을 이루어 <보람>있는 삶을 꿈꾼다. 나도 다를 바 없었고, 단순한 삶은 두려움의 크기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무작정 그 감정들을 글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때에 비해 글 솜씨는 여전히 제자리인 듯하지만, 난 꾸준히 이 글을 쓰고 있다.
죽은 예술가들을 향한 것인지 나를 향한 것인지 모를 해소되지 못한 의문을 품은 채.
그러다 한 편의 시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 분명 이것은 의문을 해소하는 특이점을 마주한 일이었다.
김용택 시인의 <생생生生>
흰 꽃 결을 그냥 지나쳤네
한참을 가다 생각하니
매화였다네
돌아가서 볼까 하다
그냥 가네
너는
지금도 거기
생생하게 피어 있을지니
내 생의 한때
환한 흔적이로다.
누군가는 이 시를 통해 한때의 젊음을 말하고, 누군가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충분한 가치를 말했지만, 나는 우연히 마주친 이 시에서 모든 예술가의 창작과 작은 나의 기록 같은 글쓰기의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보람>있는 삶을 꿈꾼다. 크고 작은 무언가를 자신만의 크기로 정한 뒤 이루기 위해 나름의 달리기를 한다. 끝내 목표 혹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전까지 나는 그것이 삶이라 여겼고, 죽어 사라질 찰나라 여겼다.
하지만 "진정한 보람은 이룬 뒤에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람은 내가 밟고 지나온 땅 위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남겨 놓은 것들과 나의 무엇인가가 묻어 있는 모든 시간들이, 나에게 보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글쓰기였고, 누군가에는 그림이며 사진이지 않았을까.
죽어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그리고 쓰고,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남기는 모든 것이 훗날 흔적이 되어, 내가 이 세상에 있었음 말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 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나는 나의 글쓰기의 이유를 정립할 수 있었다. 나는 글로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누군가의 결실을 전달하는 한 사람으로 차곡차곡 시간들을 쌓아갈 것이다. 그렇게 쌓아 가는 것으로 나는 나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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