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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주의자의 사랑

이만한 행복이면 되었다.

by 전성배

이른 아침 눈을 뜬 몸에는 짧은 시간으로는 미쳐 해소되지 못한 전날의 피로가 남아있었다. 몸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잠시 누운 몸에 여유를 달라 아우성이었지만, 일어나야 했고 조금이라도 빨리 나서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인간은 건축물이나 기계처럼, 쌓여가는 부담과 피로에 의해 부서지거나 고장 나지 않으니, 자연스레 보내는 하루의 끝에서 전날의 것은 해소될 테고, 오늘의 것이 다시 쌓일 거라 여겼다. 누적이 아닌 계속해서 해소와 축적을 반복하며 몸은 견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육체도 정신도 그것들을 절대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었다. 축적된 것은 빠져나갈 구멍 없이 안으로 파고들어 작은 병을 만들기까지 했다. 결국, 슬픈 결말의 근처까지 닿고 말았고, 그제야 과도한 모든 걸 멈춰, 드디어 모든 시간과 생각들을 되짚기 시작했다. 기억은 있으되 추억이 될 만한 것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경험과 기억은 같은 말이라,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자연스레 육체와 머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것에서 빛을 찾고, 예쁜 것을 어루만져 추억이란 이름으로 정제해 한편에 모아둘 만한 것은 없었다. 힘들고 지쳤던 날들. 몇 년 간 지속했던 나의 삶에는 과정도 결말도 썩 좋은 것이 없었다.

와카레미치

그러다 너를 만난 것이다. 정확히는 한 평생 알던 너의 사랑의 면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어릴 적부터 바라던 사랑의 표면을 그대로 일궈주던 너는 나에게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너무도 평범해, 나도 지나간 연인들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던 것이 나의 행복이었다. 그저 더 특별하고 다른 연인과 다른 무언가를 서로 해주기 바빴다.


반면, 지금의 너는 달랐다. 나 또한 달라졌다. 이만한 행복이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너는 매번 나에게 베풀었다. 저녁이 있는 삶과 그 안에서 밤이 되기 직전의 짧은 시간들을 알뜰살뜰 가득히 채워주었다. 함께 저녁밥을 고민하고, 그 식사를 마주 보며 비워가는 내내 하루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다. 몇 잔의 반주로 인해 발그레 해진 서로의 뺨을 보며 웃음을 짓고, 몸을 짓누르던 피로가 날아간 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너의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매번, 그 순간을 똑같이 겪는 대도 마음 어딘가에 안도감을 키워냈다. 나는 만족하는 중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이 짧은 저녁으로 하루를 미친 듯이 부딪혀 멍든 육체에 위로를 줄 수 있었다.


열몇 시간의 힘든 과정이 짧은 몇 시간의 결말로 매일매일 해피 엔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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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과정의 노고는 더 이상 알아줄 수 없는 변명처럼 여겨지고 있다. 결과의 좋고 나쁨으로 그가 일궈낸 시간들이 평가되기에, 좋은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이는 자신의 노고를 증명할 방도가 없다. 아마도 이 같은 현상은 현 사회가 아닌, 사회라는 개념이 등장할 때부터 나타난 우리가 감내해야 할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냉담하며, 억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찌할 방도조차 없어 슬프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더욱 너의 사랑으로 난 이 법칙에 이로운 면을 들여다본다. 하루가 안겨준 고난과 시련 들은 짧은 저녁으론 도저히 해소될 수 없었지만, 네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 속삭일 오늘 저녁의 사랑이 있기에 안도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믿는 구석이 있으니 하루가 나를 기울여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행복을 알게 해주어, 그 행복으로 인해 하루라는 과정이 죽을 것 같아도, 너라는 결말 덕분에 나는 기꺼이 결과 주의자가 되어 살 수 있다.




와카레미치 입니다. 만나고 겪으며 나눴던 말들을 이삭 줍듯 마음에 담아, 아꼈던 고매高邁한 언어들을 덧붙여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현재는 수필 <두·밤·수>를 연재하며,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고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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