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반복되는 하루로 일 년을 채워가던 어느 날 아침, 전 날과 다름없는 차림새와 전 날의 피로를 다 해결하지 못해 반쯤 가려진 눈동자로, 바닥을 응시하면서 평소와 같은 시간에 현관문을 열었고, 도어록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곧장 선선한 공기가 사정 없이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우리 집은 다세대 주택으로 아파트와 달리, 계절과 벽 하나를 두고 서있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계절에 가장 짙게 물드는 집이었기에, 현관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곧장 안으로 파고드는 것은 당연했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내 안을 순환하면서 번뜩 해지는 정신은 인위적으로 한 번 더 그 공기를 한가득 폐 안으로 쓸어 담았다. 그리고 문득, 오늘과 아주 비슷한 날을 기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상상 못할 더위를 가져다주었던 올해의 여름을 되감고, 꽤 오래 지속되었던 봄의 분홍을 넘어 찾아보니, 명을 다해가던 겨울이 마지막 숨을 뱉던 4월이었다. 그날의 아침도 이러했다. 9월의 아침과 다르지 않은 선선한 공기가 내 안으로 들어왔었다.
새벽의 여운으로 새파랗던 겨울이 끝나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 외에도 점점 빨리 찾아오는 햇빛으로 인해 중화 되는 아침의 색으로도 알 수 있는데, 나는 매번 같은 시간에 눈을 뜨는 것으로 하루하루, 빛의 강도와 색을 헤아리면서 계절이 넘어감을 인지했었다.
자연스레 계절의 변화 즉, 순행 속에서 이름과 분위기는 같지만 매번 새로이 계절은 새 생명으로 세상을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계절의 변화는 순행보다는 역행이라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분위기와 이름으로 찾아오는 계절은 예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새로 태어난 적이 없던 것은 아닐까. 계절은 세상을 분할해 위치해 있고, 시간이라는 열차가 시기에 맞춰 계절을 순행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다 여름을 찍었을 때, 열차는 전진을 멈추고 다시금 후진하며, 계절을 역행해 우리에게 다시 가을과 겨울, 봄을 안기는 지도 모른다.
가을이 햇빛에 도움으로 사방을 노랗게 물들이며 떠다니던 어느 날 한 연인의 이별을 보았다. 정확히는 이별이라 정의할 수 없는, 조금은 불확실한 관계의 맺음을 흐지부지 뱉어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서 발을 내디뎠고, 곧 그녀의 표정은 굳어갔다. 마치, 어정쩡한 이별로 남자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겁에 질린 표정 같았다. 결국, 여자는 몇 걸음을 옮기다 불안한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여자가 말을 뱉고 돌아섰던 순간의 표정과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수많은 사랑에 뱉어지는 이별에서 진심으로 관계의 끝을 원해 건네는 이별은 얼마나 될까. 반대로 오해와 권태에 의한 감정의 상처 혹은 상실로 아프게 떨어져 나가는 이별은 또 얼마나 될까. 계절의 순행과 역행의 모호함 속에서 이별이 가진 모호함을 되짚어 보았다.
계절의 순행과 역행을 정확히 구별해 무엇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나 자신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이별의 정확한 의도도 이처럼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이별이라 말했던 우리가 사실 미련 속에 잡고 잡히길 바랐을 때가 있었고, 그 모든 후회스러운 감정들을 뒤로 한 채 냉정히 이별로 끝을 내야 하는 때도 있었다.
계절이 모호하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이별’이란 두 음절이 가진 명확한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다. 부디, 계절은 짚고 되짚어도 알 수 없다 해도, 이별만은 후회 속에 미련스러운 맺음이 아니길.
와카레미치 입니다. 만나고 겪으며 나눴던 말들을 이삭 줍듯 마음에 담아, 아꼈던 고매高邁한 언어들을 덧붙여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현재는 수필 <두·밤·수>를 연재하며,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고 판매합니다.
※ 과월호 수필 구매 페이지
https://goo.gl/forms/6MVQZE6B3xlvyioy1
INSTAGRAM / PAGE / FACE BOOK / NAVER BLOG (링크有)
※ 詩와 사진 그리고 일상은 인스타와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농산물 구매 관련 문의 https://talk.naver.com/ct/wc6zzd
※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