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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10. 2018

무화과, 우리는 자주 결백한 이들을 함부로 차별한다.

무화과.

꽃이 없는 과일이란 이름을 갖은 무화과는 많이 알려져 있듯이, 구약에서는 <선악과>로 불리고 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류의 기원. 인류의 시초라 불렸던 아담과 이브는 창조주가 먹는 것을 금했던 열매 하나를 취하면서,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선과 악, 수치심과 고통, 죽음을 알게 되었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여기서 말하는 열매가 바로 <무화과>라고 알려져 있다.

와카레미치

오래된 이야기를 갖은 만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데, 그중 재미있는 것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불렸던 클레오파트라도 이 과일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미라와 함께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인 클레오파트라가 좋아했던 당시에도 무화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어져 재배되고 있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약 4000년 전에 이집트 땅에 심어졌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무화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수라는 게 증명된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에 들어왔지만 정확한 도입 시기는 알 수 없으며, 본격적으로 재배가 시작되었던 1940년대에서 가까운 과거로 유추하고 있다. 그때도 무화과는 저장성이 좋지 않은 데다, 연평균 온도가 15도를 유지하는 기후에, 겨울이면 쉽게 동해를 입을 수 있어 한 겨울인 1월에도 영상 1도를 유지하는 지역에서만 재배가 용이했기에 가장 적합한 재배 조건을 가진 남부 지방만의 전유물이었다.

와카레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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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딤섬이나, 할머니의 거친 손으로 빚어지는 만두 혹은 작은 물 풍선처럼 생긴 무화과는 살이 연해 특유의 향을 쉽게 내뿜는 다른 과일과 달리 특별한 향은 느껴지지 않는다. 또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진한 맛을 갖고 있지도 않아, 꽤 많은 이들이 무화과를 무슨 맛으로 먹냐 말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하는데, 과거 부산과 같은 바다와 근접한 지역에서 감나무처럼 흔하게 심어져 자라던 무화과의 맛을 상상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부 지방과 달리 추운 겨울에서 어느 정도 따뜻한 기후를 유지하는 남부 지방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던 무화과는 번식이 쉽고, 속성 과수이기에 빠른 결실을 얻을 수 있어, 학교나 가정집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던 과일나무였다. 하지만 무화과는 살이 무르고 쉽게 상처를 입는 과일이었고, 당시에는 저장 기술도 좋지 않아,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자란 무화과가 9월에 무르익으면 따 먹는 것이 당시 그 지역 사람들만의 별미였으나, 이후에 저장 기술과 유통이 발달하면서 현재는 수도권에서도 무화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와카레미치

한 시대의 기억이 고스란히 밴 무화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땅끝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자란다. 여전히 그날의 맛이고 그때의 향수를 갖고 있는 과실이다. 그런데도 가끔씩 들려 오는 "그때의 맛이 그립다"라는 말에 작은 위안을 전한다. 소위 때 묻지 않은 어린 시절에 입맛으로 먹은 무화과의 맛과 세월을 쌓아온 만큼 무수하게 접했던 음식과 사람들 속에서 먹은 현재의 무화과의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은은한 향과 맛, 수수한 모양새는 그만큼 어렸던 우리에게 최고의 맛이었지만, 그랬던 만큼 나이가 든 우리에게는 그저 밋밋한 과일일 수밖에 없다.

※ 시뷰가 만난 무화과를 전달 받고자 하는 독자 분은 링크를 클릭해 주시길 바랍니다.

https://goo.gl/forms/F8cff5oqBQ1RDg4B2

변하는 세월에 변할 것이라는 생각했던 것들 중에는 불변하는 것도 다수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 가변의 존재다. 우리를 기쁘게 한 것들이 더 이상 기쁘게 다가오지 않는 때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때의 맛은 여전히 살아 있음에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땅끝 해남의 해풍과 햇빛 사이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무화과 농부님이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귀농하기 전 보험 회사 보상팀에서 일했던 당시에는 보험 처리를 하며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반대로 보험 회사를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아마도, 점점 각박해지는 삶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듯하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선하지만, 이 사회가 사람을 그토록 모질게 만든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고, 힘들었다"


그분의 말을 들으며, 불현듯 그분이 선택한 무화과라는 작물과의 필연을 떠올려 보았다. 선하다 믿던 사람들 사이에 숨어 때때로 아픔을 주던 슬픔들 속에서 그는 무화과를 선택했다. 선악과라 불렸으며, 꽃이 없어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는 무화과. 


우린 꽃을 보고 예쁘다 그렇지 않다를 말한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며, 설렘과 동경을 야기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한다. 나는 지금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선하다 혹은 악하다 말하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주장을 논하는 것도, 종교를 갖고 있지 않기에 그런 측면으로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무화과가 가진 "꽃이 없다"라는 말에서 작은 것을 깨닫는다. 아름답다 와 그렇지 않다를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상 꽃. 그것이 없다면 아름다움을 잣대로 무언가를 구별할 수 없다. 

와카레미치

그럼 꽃과 아름답다는 말을 넘어, 무언가를 기준으로 대상을 나누던 일 자체를 되짚어 보자. 하나의 답이 떠오른다. 기준을 두고 나누거나, 어떠한 것에 가치를 메기는 행위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걸.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을 봐야 한다는 걸. 악의와 선의처럼 명백히 드러난 그 사람의 행위는 당연히 차별해야 하지만, 우린 도를 넘어 생각보다 자주, 결백한 이들을 함부로 차별한다.




와카레미치 입니다. 만나고 겪으며 나눴던 말들을 이삭 줍듯 마음에 담아, 아꼈던 고매高邁한 언어들을 덧붙여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현재는 수필 <두·밤·수>를 연재하며,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고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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