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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23. 2018

가을 전어, 우리는 가장 진해진다.

제철이란 이름으로

가을에 여무는 것들의 맛은 유난히 진하다. 봄과 여름에 여무는 것들도 그들만의 맛과 모양으로 전성기임을 내비치지만, 가을만큼 그 모습이 짙어지는 것들은 드물다. 같은 햇빛도 가을이란 문턱에서 그 색이 진해지고, 공기는 무겁도록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그런 것들에 얽혀 작물과 수산물은 여물고 살이 오르니, 가을에 익어가는 것들에 붙는 <제철>이란 단어의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고소한 풍미와 뼈까지 먹을 수 있는 생선인 <전어>는 가을이란 거대한 이름을 수식어로 쓰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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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인 전어는 청어와 유사한 생김새를 가져 간혹 두 생선을 두고 혼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청어는 입이 상대적으로 뾰족하고 몸은 꽁치와 비슷하게 얇으며 길쭉한 모양새를 가진 채 푸른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전어는 청어보다 몸의 길이가 짧고 청어에 비해 뚱뚱하며 입이 짧고, 등 부위에 갈색빛이 돈다.


전어가 <가을 전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가을인 9월~10월에만 잡혀서 그런 것이 아닌, 이 시기에 맛이 극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전어는 남쪽에서 월동을 마치고 난 뒤인 4~6월 사이에 난류를 타고 북상하여 3~8월에 산란을 한다. 그렇기에 산란 직후인 7~8월은 <전어사리>라고도 불리는 새끼들을 낳은 통에 대체로 살과 기름기가 적다. 그래서 산란시기가 지나고 난 뒤인 9~10월이 전어의 살과 기름기가 최고조로 올라 가장 맛이 뛰어나기에, 이 맛을 알게 된 이들이 전어는 <가을 전어>라 이름 붙였고 이맘때만 즐기는 생선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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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월동에 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맛이 좋은 게 아니냐"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11월에 들어서면서 전어의 고소한 맛에 일조하는 뼈가 억세지기 시작해 9월~10월에 먹던 그 맛을 그대로 느끼기에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을이 지난 이후에는 전어의 억세진 뼈를 제거해 세꼬시(뼈째 썰어 먹는 회)가 아닌 일반 회로 먹어도 되지만, 뼈 특유의 고소함을 느낄 수 없는 전어가 과연, 고소함의 결정체라 불리는 전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이 모든 이유가 모여 전어를 가을의 전유물로 만든 것이다.


전어는 보통 횟집에서 먹을 경우, 작은 세꼬시회 한판에 2~3만 원 정도 하며, 전어구이는 4~5마리에 보통 1만 5원 내외 가격에 팔리고 있어 작은 생선의 가격 치곤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런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어는 상인들이 손님에게 다른 생선과 함께 덤으로 주는 생선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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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어 어획량의 80%를 차지하는 남해 지역에서 전어는 과거 80년대까지만 해도 크기가 작고 살이 적어 잘 찾지 않는 생선이었다. 당연히 가격은 저렴할 수밖에 없어, 당시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생선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어, 허영만 작가의 <식객>이라는 요리 만화에서 전어의 알려지지 않은 맛이 소개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2006년 무렵에는 양식에 성공하면서 전어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양식 관련해서는 여담으로, 양식을 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보통 자연산을 구하기 힘든 어종에 한해서 연구를 통해 양식을 하는 것인데,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증가로 전어의 개체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어, 양식이 아닌 자연산으로도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의외로 전어만큼은 "양식보다는 자연산"이라는 불문율을 깨며, 균등한 맛을 내는 양식 전어를 선호하는 소비층이 매우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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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는 조선 후기에 작성된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해마다 입하立夏 전후에 잡힌 전어를 상인들이 절여서 서울에 팔아넘겼는데, 이걸 귀천 없이 모든 사람이 진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오랜 역사만큼 전어는 여러 속담에 등장하는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속담으로는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이다. 가을 전어는 기름기와 뼈의 고소함이 가장 충만할 때라 세꼬시 회로 먹어도 그 특유의 고소함을 극으로 느낄 수 있지만, 이 전어를 구워 먹으면 그 향과 맛 또한 세꼬시회 이상의 풍미를 자랑한다. 불판에 손질을 한 전어를 올려 구우면 전어 표면에 기름기가 끓어오르며 고소한 향을 풍기는데, 그 향은 맛을 보기도 전에 우리를 이미 만족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매년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드는 여름이 지나, 낙원 같은 바람을 가져오는 가을이 되면 우리는 전어를 먹으러 간다. 작지만 엄청난 풍미를 선사하는 전어를 사랑하는 이와 좋은 곳에 가 함께 먹는 일은 남은 올해를 보낼 힘을 보충하는 것과 같고, 내년에 다시 함께 할 때까지 쓸 힘을 기르도록 돕는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그 이상으로 맛있는 우리의 이야기와 웃음을 식탁에 채우는 일은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니, 올해도 전어를 먹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반드시 전어일 필요는 없다. 그것을 넘어 <제철>이라 불리는, 반드시 그 맘 때 먹어야 하는 특정 음식일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함께 하는 자리라면, 어떠한 음식으로 입을 호강시키고 배를 채우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애정을 피워낼 수 있는 자리만 있다면, 너와 함께 우리의 사랑에 또 다른 맛을 가르쳐 줄 수만 있다면, 모든 게 추억이 되고 만찬이 될 테니까.




와카레미치 입니다. 만나고 겪으며 나눴던 말들을 이삭 줍듯 마음에 담아, 아꼈던 고매高邁한 언어들을 덧붙여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현재는 수필 <두·밤·수>를 연재하며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고, 만났던 농산물을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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