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닿는다

그 남자의 소개팅

by 전성배

새벽까지 내린 비 때문에 얼룩덜룩 해진 바닥 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미처 증발하지 못하고 남은 물웅덩이 위로는 나무에서 탈락한 은행 잎들이 먼 옛날, 선비에게 건네던 물바가지 위에 띄어진 잎처럼 느긋하게 떠다니고,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은 수시로 풍경을 바꿔나갔다. 어느덧 가을의 여섯 번째 절기 상강(霜降)이 지났고, 새벽의 여운이 그대로 남은 이른 아침에는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단풍과 입김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니, 오늘은 느낌이 좋다. 그 남자의 서투름이 오늘은 묘한 매력이 되어줄 것 만 같다.


남자는 한번 도 본 적 없던 여자와 인연을 전제할 수 있는 관계를 기약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장소는 주말의 소란함이 비교적 적은 한적한 카페였고, 먼저 도착한 남자는 바깥이 훤히 보이는 창가 쪽 둥그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여자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첫 만남이 부디 모서리가 없는 동그란 테이블처럼 유하게 흘러, 답답함 없는 트인 창가 앞의 햇빛처럼 따뜻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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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얼마의 시간이 지나 여자가 카페에 도착했고, 홀로 창가에 앉은 남자를 발견한 뒤 곧바로 가 남자의 반대편에 앉아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내성적이며 말 주변도 없는 남자에게 사랑이라는 관계는 시작 자체가 어려운 분야였기에 남자의 연애 이력은 한 번이 전부였다. 게다가 인터넷에는 서툰 사람의 답답함과 노련한 사람의 편안함과 매력을 비교하며 우위를 메기는 데 열이 올라있었기에, 남자는 사실 앞서 설렘이라는 감정 앞에 두려움을 더 크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남녀의 대화에는 쉼표가 끊이지 않았고, 남자는 여자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결국, 예정된 수순처럼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미지근하게 끝났고, 그녀가 썩 마음에 들었던 남자와 달리 여자는 마음속에 의문이라는 수풀을 무성하게 키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가슴 한편에 안도와 따뜻함이 피어오르는 것을 막지 못한 채 약간의 미소를 내보였다. 연애를 모른다는 그 남자. 사랑이라는 감정에서는 동떨어진 듯한 사람은 답답하고 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그를 만난 뒤, 의문을 가진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으나, 그 속에서도 따뜻함이 피어올랐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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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어떤 멋진 말을 건넨 것도, 근사한 모습을 내비친 것도 아닌, 수수한 모습 그대로 그녀의 눈을 최대한 마주치려 노력했다.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내내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고, 끊임없는 대화의 쉼표를 최대한 덜 찍어내고자 준비했던 여러 질문과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내뱉으며 그녀를 편안하게 하고자 노력했다. 의도가 어떻든 기준치를 넘는 배려 혹은 이해는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남자는 그것을 고려해 행동을 아낀 다면 애써 시간을 내 만난 지금이 흐지부지 끝날 것만 같았다. 남자는 그저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소한, 첫눈에 두근거렸던 이 진심을 그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불안한 남자의 노력은 그녀의 마음속 의문이라는 수풀 안에 작은 꽃을 피웠다. 너무나 여려 날리는 바람에도 쉽게 흩어져 사라질 것 같지만, 남자는 분명, 그녀의 마음에 꽃을 피웠다.


그녀가 말한다. "우리 또 언제 볼까요"




와카레미치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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