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밤공기가 소리 없이 내려앉던 밤. 사랑이라는 것이 품은 이별이나 미련 같은 거시적인 감정들을 헤아리며, 감히 스스로 뱉어낸 정답들을 떠올렸다. 그러한 감정들을 수많은 글로 다루면서 나는, 감정에서 분출되는 사사로운 이야기들은 절대적으로 세월과 비례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세월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감정에 맞서 보다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거나, 그곳에서 태어날 풍파들을 더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의 사랑이 서른의 사랑보다 더 성숙할 수도, 서른의 사랑이 스물의 사랑보다 더 뜨거울 수도 있다. 인고의 시간은 모든 사랑에게 주어지는 법. 우리는 각자 살아낸 세월을 떠나, 스스로가 가진 특정한 결로 사랑에 맞선다.
새삼, 아인슈타인이 말한 상대성이론이 감정에까지 전이될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시간은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통용되지 않는다. 모든 건 그것을 가슴에 달고 서로 맞서는 연인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나의 말은 나의 세월 안에서 발현된 사랑에서 만큼은 정답이며, 당신이나 그녀 혹은 그 녀석이 말하는 사랑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정답이다. 그리고 연인은 이렇듯 서로 다른 것을 말하지만, 끝없이 조율하며 사랑을 다져나간다. 이는 사랑이 지속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밤, 사랑을 입에 올려 왈가왈부하는 목소리를 잠시 멈춰야 한다는 걸 자각했다. 사랑은 세월을 초월하여 모두가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열린 진리라 말했던 나는, 다소 어리석었다.
우리의 사랑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그들의 사연만큼 애처롭고 아픈 것은 아니었으니까. 사랑도 상대적임을 말했지만, 결코 우리의 사랑이 그들의 아픔에 비할바는 아니니까. 우리는 오늘 잠시, 사랑을 내려놓고 그들의 일생을 고개 숙여 되뇌야 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삶과 사람, 사랑 모두를 약탈한 슬픔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 독재라는 자유의 억압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난 생이별까지. 이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역사지만, 그 시절을 뼛속까지 깊이 새긴 채 살아가시는 그분들에게는 아직도 생생한 아픔이다.
늦은 밤, 눅눅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반쯤 굽은 허리를 겨우 유지한 채, 태극기 앞에서 한참을 서있으시던 이름 모를 할머니. 가로등 불빛으로 그림자 진 얼굴에 접힌 수많은 주름들이, 꽤나 많은 세월을 보내신 분이란 걸 알게 했다.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물살에서 잠시 스스로의 몸을 건져 올려 숨을 돌리던 그녀의 모습은 애달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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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히 철없이 사랑을 말했구나. 수많은 아픔 중 상흔도 남지 않을 미개한 상처를 놀리며 아픔을 말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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