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을 보는 것보다 위를 올려다보는 횟수가 많았던 시절, 요즘은 흔하디 흔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단 하나도 들리지 않던 곳에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오늘처럼 기온과 바람과 계절의 톱니가 절묘하게 맞물려 화창해진 오후는 그 시절에도 변함없이 찾아왔지만, 다른 점은 그 시절의 거리는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다는 것이다. 상점의 닫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상인의 수다와 의자에 앉아서 작게, 바람과 함께 푸념을 내뱉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전부였다. 어린 내가 처음으로 인식한 세상은 그러했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 알을 깨고 눈을 떠 보게 된 대상을 어미라 생각하며 사랑하게 되는 아기 새처럼, 나는 그 시절 그 공간을 나의 최대의 안식으로 삼게 되었다.
그 시절 이미 할머니는 무릎의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자주 찾으셨다. 이는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가족을 먹여 살렸던 세대의 고질적인 지병이었다. 허리는 점점 굽어가고, 무릎은 걸을 때마다 삐걱거렸고, 손가락의 마디는 제자리를 못 찾고 어긋나 있었다. 20년은 훌쩍 넘는 과거의 그때도 할머니는 지금과 다름없이 고통으로 인한 신음을 입에서 떼놓지 못하셨다. 그래서 한 달에 몇 번씩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버스를 타, 약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청주 보은의 한 병원을 갔었다. 짙은 갈색의 나무판자가 바닥과 벽을 이루고 있어, 사람처럼 나이 들어가던 것이 눈에 훤했던 그 병원은 복도를 거닐 때마다 할머니의 신음처럼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키보다 한참 위에 있는 창문은 오돌토돌 돌기가 올라와 있는 반투명에 유리로 이루어져 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았지만, 방음은 되지 않아 바깥으로 의사선생님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던 병원. 할머니는 지금도 가끔씩 나를 볼 때마다 얘기하신다.
"할미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운지 아니. 할머니가 무릎 아프다니까, 성배 니가 "의사 선생님 할머니 무릎 바꿔주세요. 할머니 안 아프게요"라고 말을 하던 게 말이지. 병원 갈 때마다 매번 그 말을 하는 우리 강아지가 얼마나 예뻤는지 아니···."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나서 채우게 된 생生의 기억은, 더 나이가 들어도 큰 물줄기 정돈 기억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어느 시점에 어떤 일을 했고, 누군가를 만났다는 큰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과거의 어렸던 자신의 기억은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데, 이는 망각이라는 장치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의 상한선을 정해두고 가장 오래된 것부터 지워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망각에도 협의점은 있었으니, 과거 한차례 기억과 추억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말했던, 장소 혹은 사람에게 심어두는 방법이다.
나에게는 그 낡았던 병원이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했던 기억을 속삭여준다. 삐걱거리는 바닥과 벽의 소리, 바래진 창문 틀, 건물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 이러한 병원의 바래짐이 그 시절의 할머니와 나를 기억하게 해주며, 사연을 떠올리게 한다.
휴일을 이용해 방문한 동인천의 한 카페는 그 시절과 유사한 낡은 병원을 리모델링 한 곳이었다. 틀만 유지한 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꾼 것이 아닌, 그 틀에 카페의 일부를 조금씩 떼어다 채운 듯한 장소. 그래서 낡은 의자와 계단, 벽, 수납장까지 그대로 둔 것으로 옛 기억을 강하게 불러왔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내가 가장 사랑했던 최대의 안식을 주는 그날의 풍경. 헤아릴 수 없는 질량에 시간이 왜곡되어 흐르는 곳, 동인천은 옛 기억의 파편을 구석구석 박아두고 있다.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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