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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pr 11. 2017

파파야 멜론

나른하고, 게으른 단맛

#마흔두 번째 글


참외일까, 멜론일까


2년 전쯤, '애플수박'이라는 이름에 신품종을 만난 적이 있었다. 보통의 사과보다 조금 더 큰 모양에 영락없는 수박의 무늬를 지닌 이것은, 첫 등장 당시에 상당한 센세이션(sensation) 불러일으켰고, 그 보다 예전인 1900년대 중반,  충청남도 천안에서 탄생한  '개구리참외' 또한 당시에 큰 관심을 모았다. (애플수박과 참외는 차후 칼럼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여기, 그와 비슷한 맥락을 지닌 과일 하나가 더 있다.  얼핏 봐서는 수박 같기도, 덜 익은 참외 같기도 한 이것은 '경북 고령'이 주산지로 알려진 '멜론'이다.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파파야'라는 품종으로 불리는 멜론, 이 파파야 멜론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으나, 수많은 멜론의 품종 중 하나인 듯하다. 멜론은 워낙 겉부터 속까지 다양한 색과 무늬, 크기를 지녔기에 어떠한 것을 기준으로 나누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네트''무네트'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네트(net)'는 말 그대로 '그물'이란 뜻이며, 멜론의 표면에 분포된 그물 무늬를 말한다.

네트 멜론의 경우, 그물의 생김새가 맛있는 멜론을 고르는 데 있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담 이 파파야 멜론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바로 '무네트'에 속한다.

그렇지만, 속을 보면 영락없이 참외를 닮았다. 백록색을 선명히 뽐내면서 말이다. 애초에 참외와 멜론은 하나였기에 가능하리라,


하나의 과일, 그리고 채소


멜론과 참외는 식물학적으로는 같은 작물이다. 여기엔 수박도 포함된다. 원산지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분화되면서 서양에 전파된 것은 멜론으로, 동양으로 전파된 것은 참외가 되었다.

농작물은 사람에 의해 의도적으로 가장 맛과 향이 좋은 종이 선택돼 재배되기에, 서양에서는 단맛을 특화시켜 멜론으로, 아삭한 맛을 즐겼던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특화시켜 참외로 자리 잡게 했다. 그렇기에 수박과 참외의 영명이 각각 'watermelon' 'oriental melon'이라 붙여진 연유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멜론은 그리스어로 '과일'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사실 멜론과 참외는 엄연히 과채류에 속하는 '채소'이다. 채소는 뿌리를 먹는 근채, 잎을 먹는 엽채, 과실을 먹는 과채로 나뉘며, 멜론과 참외, 수박이 과채류에 속 한다. 하지만 긴 역사 속에서 발전을 거듭한 끝에 채소보다 더 높은 당도와 영양을 갖게 되어, 현대에 들어선 '과일 채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 칼럼에서-)

파파야 멜론을 맛보다


벚꽃이 만개한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아, 여름은 마음이 그리 급했던지 오후에 햇빛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금세 외투를 벗겨 티 한 장이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런 날, 이 햇빛과 잘 어울리는 초록의 멜론 하나를 들었다.


곳곳에 초록이 돋아난 땅 위에, 파파야 멜론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애초에 덩굴에 매달려 땅에 얹혀 자라는 탓일까, 그 모양새가 어울릴 만도 했다. 그런 오후의 햇빛과 땅의 선선함 위에서 멜론을 잘라 내었다. 노란색이 초록을 덮어 갈수록 후숙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파파야 멜론은 지금이 딱 중간 정도 익은 듯해 보였다.

씨를 중심으로 하얀 살이 꿰차 있었고, 그것이 껍질에 가까워질수록 은은하게 초록에 물들어 있었다. 풋내가 날 듯한 외형은 반감을 사게 했지만, 달콤한 향이 이내 코에 닿았다. 

칼로 껍질을 깎아 낼 때에는 마치 키위에 칼을 댄 듯 부드럽게 쓸려 나갔고, 먹기 좋게 토막을 내니 영락없는 참외의 모양새를 보이더라, 그리고 곧장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맛,


그 어떤 멜론과 견주어도 기죽지 않을 당도 높은 맛이었다. 식감과 먹기 좋은 형태는 기존의 네트 멜론에선 찾아볼 수 없던 '편리함'까지 주었다. 기존의 멜론은 맛은 좋으나 한번 먹어야 할 때, 마음에 준비를 해야 하니 말이다.


허나, 파파야 멜론은 준비해야 할 부담감도, 불편함도 없이 편하게, 나른하게 입에 들어왔다.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뉘엿뉘엿 불어오는 노곤 노곤한 오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게으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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