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가 좋다고 한다.
파도소리를 어떻게 써야 할까. '슈우욱 파' '스으읍 파' 이 소리로 쓰면 될까?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날 귀에 담긴 파도 소리가 썩 마음에 들었는데
근처에 큼지막한 소라가 있었으면 했다. 누리끼리한 백색이 이 모래랑 분간이 되지 않는 그런 소라.
어릴 적에는 소라가 '녹음기'랑 비슷하다 생각했었다. 이 소라가 바다 근처에 있기 때문에 파도소리밖에 담기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크기가 클수록 파도소리가 더 길게 담길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지만─
알면서도 난 지금 이 나이에 소라를 찾고 있다. 소라를 찾아 당신 손에 쥐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이 되어 있었다. 이 파도소리가 좋아 가만히 듣고 있는 당신에게 환심을 사고 싶었으니까.
바다가 움직이는 내내 모래는 맥 없이 적셔지고, 그 위를 걷는 동안 단단해진 모래에 선명하게 발자국이 찍히는 이 순간은, 당신의 환심을 사기 너무도 좋은 기회였다.
하늘은 흐린 탓에 내 마음을 알리 없고 흐린 바다는 주위에 사람들을 뜸하게 했으니, 무엇을 해도 내 마음이 밝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소라를 찾아 손에 쥐어줘도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 마음은 나이가 들어가는 몸과 달리, 당신을 만난 후 한 없이 어려지고 있다. 소심하고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는 어린 놈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온갖 핑계로 당신에게 말 한번, 약속 한번을 얻어 내는 것에 열의를 불태우기 까지 한다.
그러니 그런 속 좁은 놈이 대놓고 뭘 할 수 있겠는가, 모래 사장만 두리번 거린다. 당신이 좋아하는 파도소리를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소라'만 찾는 다면 당신의 관심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은 그럴 수 없을텐데─ 망망대해에 빠진 한 사람을 그 넓은 바다가 신경 쓸 수가 있을까? 관심은 고사하고 빠진 것 조차 모를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 발길질이 물살이 되지 않는다. 발버둥은 그저 발버둥일 뿐.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쥐어 줘도 환심을 얻어 낼 수 없다. 난 그저 이 바다의 표류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제 괜찮다. 나이가 들며 좋은 건, 낙심하더라도 실의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좋으면 되었다" 라 생각하고 눈을 한번 감으면 그만이다.
저기 웃고 있는 당신을 보며 "그저 그만하면 되었다"라고 여기면 된다. 이 마음이 설령 부풀어 오르고 터질 것처럼 발작을 해대도, 당신의 온갖 일에 신경이 쓰여도 그냥 참고 넘기면 그만 이다. 어려진 마음은 해낼 수 없지만, 나이든 머리는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환심은 이제 되었다. 난 카메라를 든다. 셔터음이 파도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 터라 당신의 모습을 편히 담을 수 있다. 파도를 끼고 걷는 모습,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담을 아주 좋은 기회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순간순간 달라지는 모습을 담는 즐거움은 꽤 울적했던 마음이 이 순간만큼은 보송보송해진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주며 환심을 끌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이런 나날이 자주만 찾아와 주면 좋겠다. 보고 싶은 소리, 듣고 싶은 소리를 자주 마주하기만 하면 된다. 그만하면 나는 괜찮다.
파도소리가 좋다. 이 소리가 들리는 내내 당신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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