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자주 찾는 친구들이 있다. 한 녀석은 나만큼 술을 좋아하지만 운동을 나만큼은 하지 않아 술배가 많이 나왔다. 또 한 녀석은 나만큼이나 커피를 자주 마신다. 내가 작업을 하기 위해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신다면 녀석은 오로지 커피를 위해 카페를 찾으므로, 커피를 나보다 더 좋아한다고 볼 수 있겠다. 커피는 그렇게 마셔도 술은 입에도 못 대는 건 녀석의 또 다른 특징이다.
한 놈은 커피보다는 술, 또 한 놈은 술보다는 커피. 그 사이에서 커피든 술이든 뭐든 오케이 하는 나. 누구한테든 맞춰 줄 수 있는 나를 녀석들은 자주 찾는다. 우리는 중학교 동창이다. 우리 셋이 유일하게 같은 반이었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중학교 기억은 초등학교만큼이나 아득하지만 기억하는 머리가 3개쯤 되면 중학교 3학년 때 기억 정도는 선명히 떠오른다. 기술・가정(통칭 ‘기가’) 선생님이 우리의 담임이었다는 것, 우리 셋이 종종 선생님의 요청으로 방과 후에 기가 실습실에 있는 냉장고 청소를 함께했다는 것, 그 보상으로 피자를 먹었다는 것 등등 굵직굵직한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자잘한 기억도 녀석들과 함께라면 무리 없이 떠올릴 수 있다. 3학년 담당 선생님들 중에 미술 선생님이 가장 미인이었다는 것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떠올린다. 이런 회상신에도 남자들의 우스운 점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매년 몇 번씩 반복된다는 것. 술을 좋아하는 현수는 나와 함께 취기가 올라오면 옆에 있는 중연까지 공감할 수 있는 중학교 얘기를 자주 한다. 현수만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나도 다를 바 없다. 커피만 좋아하는 중연이도 매번 맞장구를 친다는 점에서는 새삼 대단하다. 중연이는 그야말로 우리 사이에 유재석 같은 인물인 것이다. (유재석은 술자리에서 술 한잔하지 않고도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생각해 보니 머리가 3개라 그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똑같은 걸 말하길 좋아하는 남자 입 3개가 쉬지 않고 기억을 리터치하기 때문에 안 잊어 먹는 것 같다.
취향이 다른 두 사람과 두 사람과 취향이 같은 한 사람. 어떻게 보면 맞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내가 징검다리가 되는 듯 보인다. 착각이 아닌 게 셋이서 약속을 정할 때 내가 나가지 않으면 취소되는 경우가 잦다. 크게는 일을 하며 친구를 만나는 게 그들의 일상이라면 유일하게 애인이 있는 난, 일을 하며 친구를 만나고 애인도 만나야 해 그들과의 만남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그들은 그냥 다음에 다 같이 보자며 약속을 미루는 것이다. 나는 그게 내심 좋다가도 미안했다.
내가 그들에게 그만큼 같이 있으면 즐겁고, 계속 찾게 되는 친구라 생각하면 좋다. 한편 그럼에도 나의 사정으로 함께할 수 없을 땐 미안한 것이다. 나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그게 기우였다는 걸 안다. 조금은 덜 미안해 해도 된다. 현수와 중연이에게도 자신을 많이 사랑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이 만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내가 그들의 친구이듯 그들은 또 누군가에게 친구이며, 성격 좋은 두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은 친구를 두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친구를 만나느라 나를 볼 겨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건 슬프지만, 반대로 나를 사랑해 주는 만큼 내가 사랑해 줄 수 없는 상대가 다른 누군가와 나보다 더 가깝다면 안도하게 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랑받고 있다면 안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안도감은 다시금 내가 더 사랑하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게 한다. 조금은 덜 사랑해야겠다고. 주는 사랑만큼 받지 못하는 사랑에 슬퍼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요즘은 그런 애매모호한 관계가 좋다. 너무 사랑하지도 너무 사랑받지도 않는 관계.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사랑받는 관계는 서로를 단단하게 굳힌다. 굳어질 대로 굳어진 서로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금이 가고, 심하게는 산산이 부서지기도 한다. 서로 너무 사랑하지 않는 관계는 그럴 걱정이 없다. 금이 가거나 깨질 만큼 굳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그런 관계가 더 오래가는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하여 현수와 중연이와 내가 서로를 덜 사랑했으면 좋겠다. 서로가 막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적당히 예뻐 보였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함께일 수 있을 것이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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