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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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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Apr 06. 2019

[유서 수집-2] 영화 '오베라는 남자'

까칠한 원칙주의자가 삶의 끝에 남긴 편지

두 번째 유서는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서 발견했다. 주인공인 오베는 자신의 삶에서 전부 같았던 아내가 죽고 나서 삶의 의미를 잃었다. 게다가 원리원칙을 중요시하고 예외라고는 인정하지 않는 괴팍한 할아버지라 친구도 없다. 오베는 자살을 준비한다. 목을 졸라맨 순간, 차량 진입이 금지된 도로에 이삿짐차가 들어온다. 원칙을 어기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오베는 문제를 해결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유보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자 부인의 묘지에서 오베는 이렇게 말한다.



죽기가 살기보다 더 힘들어



오베는 이웃들이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화를 내면서 이삿짐 들어오는 걸 도와주는 것을 시작으로 이웃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게 되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집을 잃은 고양이를 집에 들이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베는 마음의 장벽이 허물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처음으로 삶의 기쁨을 맛본다. 그 기쁨은 내가 행하는 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쁨 아니었을까?



오베는 이웃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가 만약 자살에 성공했더라면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을 수 있었을까. 원칙주의자인 만큼 구체적인 유서를 남겼다.


오베의 유서



어리석은 짓을 한 건 아니니 걱정하지마.

의사 말대로 때가 된 거뿐이야.

내 심장이 너무 크다고 했잖아.

심장이 크다니 작은 것보다 낫지만

그게 몸에 부대껴서 난 곧 떠나게 돼있어.

장례식은 교회에서 조용하게

괜한 수선 떨지 말고 조용히 치러주길 바란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장례식에 부르고

고양이 먹이는 하루에 두 번 주고 똥 쌀 때는 쳐다보지 마.

우리 마을 차량 금지는 목숨 걸고 지켜.



오베의 유서를 따라 적다 보니 원칙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세세하게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례방법, 초대할 사람, 아끼던 것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것들이 적혀있는 점이 그러하다. 오베의 생이 자살로 마감되지 않아서 내 마음도 흐뭇했다. 오베의 삶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 또는 영화로 보셨으면 좋겠다.


나는 요새 인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찾아본다.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만큼 인생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끝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더 해볼까?라고 생각할 때 삶은 더 생생해진다. 그리고 그 끝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유서를 써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서를 써본다는 것은 삶의 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모습을 구체화해보는 것이다. 또 유서에는 내가 남기고 갈 것들, 내가 떠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게 되므로 내 인생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인생의 마지막에 어떤 말을 남기고 가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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