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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쑥버무리떡과 민들레 나물

엄마의 별미

by 따뜻한 봄숲

봄쑥과 민들레


아직 춥긴 한데 한낮이 지나서 햇살이 꽤 따뜻하다고 느낄 때쯤이면 엄마는 새벽부터 김밥을 싸서 우리들을 데리고 대공원이고 뒷산이고 부지런히 데리고 나가셨다. 토요일에도 일하러 나가시는 아빠와 다 같이 놀러 나가 본 기억은 8월 1일부터 3일까지 회사 전체가 다 쉬는 한 여름에 외가친척들 다 모여 계곡으로 놀러 가서 하루 종일 물놀이하고 더우면 수박 먹고, 전 부쳐 주시면 또 먹고, 한참을 놀다가 돗자리 위에서 수건으로 배만 덮고 낮잠을 내리 잤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풍기면 슬슬 저녁 먹으라는 신호니 또 달려가 밤늦도록 먹고 놀았다. 그때가 아니면 껄껄껄 웃는 아빠 곁에서 놀 수가 없었다.


언뜻 저 멀리서 보이던 엄마는 쪼그리고 앉아서는 나무 밑, 길가 옆으로 조록조록 퍼져있는 어린 쑥을 캐셨다. 내가 가만히 곁에 앉으면 작은 칼,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씩 더 꺼내서 놓아주셨다. 쑥 말고도 캘 수 있는 민들레, 질경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 주셨다.


'눈에 보일 때마다 입으로 펄펄 불어서 온 동네 둥실둥실 떠 다니던 민들레홀씨? 그거 눈에 들어가서 눈병도 걸렸는데? '


찜솥 가득 쑥버무리기 떡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쑥을 다듬고 콩을 물에 씻어 불리고는 불 위에 꺼다란 찜솥을 올려두신다. 어리 쑥이라 먼지와 흙만 툭툭 털어내니 금세 뚝딱이지만 내내 허리 굽혀서 봄햇살을 머리로 받으셨는데 피곤도 안 하실까? 반 봉지도 못 채운 나는 꾸벅꾸벅 집에 오는 길 내내 엄마 어깨를 베고 졸았다.


솥에 김이 오르면 곱게 빻은 맵쌀과 쑥, 콩과 냉동실 속 봉지 안에 넣어 두었던 늙은 호박꼬지를 꺼내서 뒤섞으셨다. 깨끗이 삶아두신 면포를 솥 위로 펴고 쌀가루범벅을 두툼하게 올리고 뚜껑을 덮어둔다.


큰 솥이라 시간이 걸리니 그 사이 저녁밥을 지으신다. 그동안 나는 옆에서 뜯어온 민들레들을 씻었다. 잎 아래에 붙은 흙을 물에 흔들며 씻고 뿌리 부분은 엄마가 칼로 긁어 손질하셨다.


떡 찌는 큰 솥옆에 작은 냄비를 올리고 물을 끓여 민들레를 살짝 데쳐내고 시금치랑은 다르게 간장과 식초를 넣고 깨와 참기름은 없이 새콤 쌉싸름하게 무치셨다. 엄마는 나물 데친 물은 항상 식혀두었다가 나와 언니가 저녁세수할 때 마무리물로 쓰라고 욕실로 건네주셨다. 진하고 노르스름한 갈색의 쓴 향이 풀풀 나는 나물 데친 물.


저녁 먹은 뒤라 나는 배가 차서 떡은 먹지 않았다. 다음 날, 그다음 날 말고 며칠이나 더 지나 주말쯤 간식으로 쑥버무리떡을 주시면서 마지막이라 하셨다.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이게 마지막? 했더니, 엄마가 우리 학교 보내고 한 입, 점심대신 두 입, 다음날 저녁대신 세 입 드시다가 다 드셨다고 했다. 엄마의 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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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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