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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두부김치만두

묵은지로 만드는 별미

by 따뜻한 봄숲

배추김치만 50 포기


엄마는 김장을 50포기씩 하셨다. 배추김치만이다.

김장이 끝나고 나서도 고들빼기김치, 갓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겉절이, 동치미를 줄줄이 담그셨다.


예전의 엄마들은 대게 김장한다하면 50 포기, 100 포기가 기본이셨나 보다. 어찌나들 손이 크신지. 지금 어렴풋하게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 집 부엌에는 작은 2단 냉장고뿐이었는데 그 많은 김치들을 어디에 다 두고두고 익히셨는지 궁금하다. 전원주택도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다닐 적 김장하는 날은 아파트 1층부터 5층 옆집까지 문이 다 열려 있었다. 트럭으로 온 아파트 배추가 산더미만큼 배달 와서 옆집 아줌마, 아래층 아줌마 부지런히 배추랑 무, 갓을 날랐다. 집 거실에는 큰 비닐이 깔려있고 그 위에 커다란 대야들이 쌓여있고 소금포대며 젓갈통이며 평상시 부엌에서 못 보던 통들이 줄줄이 나와있었다.


해마다 엄마는 고춧가루 색이 올해는 이쁘네 안 이쁘네 이야기와 외갓집 마늘농사, 고추농사에 대해 말을 하셨고 시장에서 이번엔 생새우를 얼마에 샀다의 화두를 늘 빼먹지 않고 하셨다. 고춧가루의 색과 외갓집의 풍작과 생새우 가격이 중요하신 엄마.


절임배추가 없던 그 시절은 욕조 속에 소금물 가득한 배추들이 꽈악 들어차 있었다. 아빠는 밤늦게야 집에 오셨고 힘쓸 동생은 빼액 도망갔으며 언니는 회사에 있으니 김장조수는 나뿐이었다. 사실 조수가 하는 일은 엄마가 말하는 양념 찾아서 뚜껑 열고 붓기, 다시 뚜껑 닫아 놓기, 양념 버무릴 절인 배추 떨어지면 가져오기, 김치가 꽉 찬 김치통은 뚜껑 닫고 행주로 잘 닦아 베란다로 옮겨두기 같은 하찮은 것들 뿐이었다.


엄마는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면서 속이 노오란 배추꼬갱이가 나오면 무랑 양념을 넣어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넣어주셨다. 그게 너무 맛있었다.


"스읍 하, 스읍~하아, 맛있어, 하나.더 줘!"


입가가 얼얼하게 맵고 수육 한 점 없어도, 씹을수록 꼬소한 겨울 배추의 단 맛과 맵고 짭조름한 양념무를 입 안 한가득 우걱우걱 먹으면 정말 눈물 나게 맛있었다. 한 점 두 점 김장배추 속 노랑 속은 나를 다 골라주셨다. 한 일보다 얻어먹은 게 더 컸다.



절임배추로 20 포기


식구가 작아진 친정엄마는 더 이상 김장을 하지 않으신다. 집에서 밥을 함께 나눠먹는 식구가 줄어서 김치도, 밥도, 반찬도 엄마가 하시는 게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이제 시댁으로 김장을 하러 간다. 강원도 고랭지 산지에서 배송된 배추가 벌써 물기 쫙 빠진 채로 베란다에 수북이 쌓여있다. 나, 신랑, 시누이 세 명이 둘러앉아 시어머니가 하나씩 붓는 양념들을 골고루 섞어서 각자 제 앞으로 수북이 가져와 절임 배추를 펼쳐 사이사이마다 부지런히 양념을 펴 바른다.


서로 자기 배추 속은 안 보고 맞은편 배추 사이 하얗게 양념 안 바른 잎만 시어머니한테 일러가며 김장을 했다. 그때부터 본인이 양념 넣은 김치는 본인이 가져가는 책임제로 바뀌어서 본인이 맛있게 만들면 맛있는 김치를 먹는 거고 허옇게 대충 바르면 김치찌개도 못 끓일 김치를 일 년 내내 먹게 된다. 맛있는 김치찜, 김치전, 김치찌개 해 먹으려면 아낌없이 양념 골고루 발라서 속까지 빠알갛게 채워 넣어야 한다.


눈가 근처에 고추양념 덩이가 튀어 화장실로 달려가려는데 허리가 안 펴진다. 꼬부랑 할머니가 이래서 허리를 맨날 구부린 채 걸으시나? 아파서 펼 수가 없다. 아고고 소리까지 나온다.


'분명 20포기랬는데.. 그리고 세 명이서 한 건데? 대체 엄마는 혼자 50 포기를 어떻게 하신 거지.. '


40대가 되기도 했지만 직접 해보니 허리가 굳은 듯 아팠다. 20대 어린 엄마가 되어 70대 늙은 엄마가 되셨을 때까지 매번 김장이든 머든 음식을 할 때 먼저 도와달라고 말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먹으러 방에서 나오라고 부르시거나 나누어 주실 때만 연락을 하셨다.


정말 빵점짜리 딸, 눈치 없는 조수였다. 엄마 곁에 같이 앉아 눈치껏 배워서 배추 안에 속을 넣고 팔을 뻗어서 양념을 끌어다 모으고 다시 버무리고 잎을 펼쳐 양념을 채우고, 겉잎으로 싸악 감싸서 통 안에 착착 넣는 것까지 도와드릴걸... 시간 다 지나고 고생을 해봐야 이렇게 미안하다. 젊어서 고생할걸.


한쪽에서 시어머니는 수육을 삶으신다. 어머니도 예전엔 50포기씩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아들 좋아하는 겉절이는 집에 아무리 김치가 많이 있어도 아들이 갈 때마다 새로 하신다. 김장하는 날도 어머니는 겉절이를 따로 해서 아들 앞에 놓아주셨다. 사랑받는 아들이다.


김장이 슬슬 끝날 즈음 속이 노오란 배추 속이 보이길래 톡 하고 뜯어내서 무랑 갓이랑 양념 듬뿍 무쳐 돌돌 말아 신랑 한입 주고 그다음 노란 중간잎 떼서 내 입에 꽈악 넣었다. 맛난다. 이젠 엄마가 내 입에 넣어주던 제일 맛난 꼬소한 노란 쌈을 못 먹으니 아쉽고 그립다. 원래 뭐든지 가만히 받아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말이다.


만두공장공장장


엄마는 설이 되기 전이면 거실에서 내내 밤늦도록 만두를 만드셨다. 적어도 천 개는 만들지 않았을까? 체감상 분명히 그 정도이다. 만두는 온 가족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만드는 걸 도왔다.


집에 만두피 만드는 기계가 있었는데 자동 아니고 수동식이었다. 엄마가 만두피반죽을 치대서 건네주시면 겉에 밀가루를 묻히고 기계의 폭을 넓게 해서 반죽을 스윽 하고 돌린다. 힘줘서 핸들을 잡고 돌려대면 반죽이 눌리면서 주욱하고 길어져서 나왔다. 힘쓰는 건 남동생 몫이었다. 다시 반죽을 반에 반으로 접어서 기계에 넣고 돌리면 반죽이 접히고 눌리고 길어지고 하면서 쫄깃하고 부드러운 수제 만두피가 천천히 길게 뽑아져 나왔다.


계속 폭을 좁혀가며 얇게 반죽이 나오면 할머니 틀니같이 생긴 만두 찍는 틀 사이에 만두피반죽을 올리고 만두소 한 숟가락을 듬뿍 넣고 나서 틀을 탁 하고 닫는다. 수제로 만든 만두는 피가 좀 더 도톰하지만 쫄깃쫄깃했고 속이 꽉 차게 들어있어도 잘 터지지 않아 3~4개만 먹어도 배가 찼다.


묵은 김치, 두부, 부추, 숙주, 계란, 당면, 간 돼지고기와 간 소고기는 반반씩. 만두소를 보면 빨간 김치랑 물기 꽉 짠 두부가 정말 산더미만큼 보였다.


공장장 엄마는 큰 찜솥에 물을 올리시고는 만두공장이 잘 돌아가는지 순찰을 한 번 도신다. 반죽이 모자라면 얼른 숙성하고 있던 반죽덩이를 꺼내 반죽팀에 전달 주시고 만두피가 두껍다 싶으면 다시 간격을 줄이고 반죽들을 다시 접어 얇은 두께로 조정해 주셨다. 쟁반마다 만두가 그득히 착착 담겨 나오는지 확인이 되면 김 올라오는 찜솥 위로 만두를 줄지어 올리고 뚜껑을 덮어 김 푹푹 나오게 찌셨다.


밤 11시 야참으로 간장 콕콕 찍어 먹는 찐만두는 정말 입에 착 감긴다. 먹는 속도가 더 빨라 몇 쟁반을 먹고 나서야 만두들이 냉동실로 들어간다. 한 번씩 살짝 쪄서 한 김 식힌 채 얼려지는 만두들은 다음 날부터 간식이며 끼니며 계속 먹거리로 나왔다.




튀김두부김치만두


출출한 오후 3시 즈음이면 튀김냄새와 요란한 소리가 온 집에 퍼진다. 부엌에 가보면 어제 얼려둔 찐만두를 한가득 튀기고 계신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모락모락 김을 후우 후우 불어가면서 통통하게 부푼 튀김만두를 마요네즈에 푹 찍어서 먹는다.


찐만두, 군만두랑은 전혀 다르다. 찐만두는 쫄깃한 만두피와 두부, 김치맛의 깔끔하고 진한 매운맛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튀김만두는 두툼한 만두피가 튀겨져서 고소함과 바삭한 식감이 먼저 느껴지는 별미 중 특급 별미이다. 시판 만두를 굽거나 튀겨봐도 이 식감은 나오질 않는다.


설마다 해 먹던 집만두를 좋아했다. 만들 땐 이 만두소를 대체 언제 다 만드냐며 공장장님께 단체로 항의도 해봤지만 늘 먹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냉동실에 늘 한가득 차있던 집만두가 너무 그립다.



나는 김치만두 좋아해


씹는 맛도 아는 맛도 다르니 만두를 잘 사 먹지 않았다. 그러다 커가는 아이들 간식을 사면서 맵지 않은 고기만두를 사게 됐다. 고기의 육즙과 담백함을 아이들은 좋아했다. 어느 밤, 강원도 김치두부만두를 우연히 알게 되어 주문을 했다.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

일단 두부와 김치가 가득 들어 칼칼하고 큼직해서 베어 물기 좋았다. 끓여도 보고 구워도 보고 튀겨도 먹었다.


간만에 연차 내고 쉬는 날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랑 학교 보내고 혼자 김치만둣국 한 그릇 맛있게 끓여 먹었다. 맑은 멸치 국물에 계란 한 알 탁 풀어 만든 만둣국. 비슷하지만 달랐고, 다르게 맛이 있었다. 시원하고 칼칼한데 담백한 맛.


기억 속의 그 맛을 다시 먹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새로운 김치두부만두를 좋아하기로 했다.



조용한 작가생활

따뜻한 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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