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단 맛
시장김이 맛있는데!
엄마가 시장가신다고 하시면 나는 늘 따라나섰다. 평소에는 군것질거리를 절대 사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소풍 때는 과자 두 개, 초콜릿 하나, 음료수 한 개를 살 수 있었다. 어김없이 나는 칸쵸, 고래밥, 해바라기씨, 맥콜.
간식은 늘 집에서 만들어 주셨다. 엄마표 완두콩 찐빵, 엄마표 오징어 피자, 엄마표 떡국떡 떡볶이. 시간이 흘러보니 엄마가 돼 보니 나는 엄두도 안 난다. 매일매일 도시락도 모자라 간식을 직접 다 만들어주다니. 그것도 손 많이 가는 것들만. 근데, 떡볶이만큼은 엄마표가 맛이 없었다.
'떡볶이인데 건강한 채소맛만 듬뿍이라니.. '
엄마가 장바구니 들고 현관문을 잡고 서 계시면 나는 가방만 내려놓고 카트를 끌고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가끔가다가 너무 졸리거나 노느라 내가 못 따라나서면 엄마는 꼭 꼬셔서 날 데려가셨다. 조잘조잘 시장단짝친구 없이는 엄마도 재미가 없으신 거다.
방앗간에서 엿기름 사실 때 안에 들어가서 참기름 짜는 걸 내내 구경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사악 돈다.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시간대, 배가 고파 냄새에 민감해진다.
어디선가 밥도둑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구이' 시장골목 작은 틈에 자리 잡은 손 빠른 장사꾼 아주머니는 까만 김 위로 하얀 맛소금 솔솔 뿌리고 참기름 반질반질하게 착착 발라 뜨거운 롤링기계 사이로 쉴 틈 없이 한 장씩 밀어 넣으면서 김을 굽고 있었다.
대량생산된 고소한 냄새하나 없는 밋밋한 도시락김이랑도 다르고 맛소금은 안 좋다고 구운 맨김만 먹는 우리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시장표 구운 김.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참기름맛이 착 달라붙은 채로 뜨겁게 달궈진 열판에 구워져 바삭함까지 가진 김, 갓 지은 쌀밥만 있으면 한공기도 뚝딱 할 수 있을 텐데. 아, 배고프다. 그래도 엄마는 평생 사줄 생각이 없으시다.
"달래랑 냉이 샀어, 얼른 와 "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딸내미는 알아서 오겠거니 하고
달래지도 않으신다. 삼 남매 도시락에 늘 넣어주시는 갓 튀긴 동글 어묵사실 때 옆에서 한두 개 집어먹고, 김 은 빠르게 포기했다 이제 시장에 온 진짜 목적을 말할 때이다.
떡볶이
엄마는 한쪽에서 졸여지고 있는 쌀떡볶이로 먹으라고 이천원을 건네시고는 분갈이 흙이랑 영양제 사러 옆 화원에 가셨다. 꽃이나 화초는 늘 윗집, 아랫집 화초 꺾꽂이 해오시거나, 크게 키워서 분양해 주시곤 고맙다고건네시는 새로운 꽃화분을 받아오셨다. 그렇게 우리 집은 동네꽃이 다 모여있는 화원이 되어갔다.
떡국떡 말고 쌀떡 말고 말캉말캉 길게 늘어지는 밀떡으로 만든 달콤 매콤한 떡볶이를 깻잎이랑 어묵까지 돌돌 한번에 말아서 한 잎 가득 먹고 갓 튀긴 김말이 한 개랑 오징어 튀김까지.
집에선 절대 먹을 수 없는 맛이다.
엄마표가 최고
방학 때가 되면 작은 이모네 집 동생 둘, 막내삼촌네 동생 둘까지 우리 집에 방학 내내 있다가 갔다. 올 때마다 살이 몇 킬로씩 쪄서 돌아갔다. 이모와 외숙모는 매년보내셨다. 한 번은 내가 작은 이모네 한 달 동안 있어봤는데 왜 우리 집으로 보내셨는지 알 것 같았다. 이모와 이모부 두 분 다 이른 아침부터 일을 나가시니 미리 부지런히 차려두신 아침밥은 어쩔 수 없이 식었고, 간식도 근처 슈퍼에서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 신나서 매일매일 군것질을 했다. 2주가 지나니 그것도 시들했다.
우리 집에 임시 보육으로 맡겨진 동생들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갓 지은 밥에 국에 매일 고기는 없어도 늘 푸짐한 나물반찬, 두부반찬을 잘도 먹었고 뒤돌면 우리 엄마는 과일이며 떡이며 시시때때로 간식을 주셨다.
특히 일요일이면 별미가 나왔다. 핫케이크가루로 만든 퐁신퐁신 핫케익을 산더미처럼 만들어주셨다. 거기에 쵸코 네스퀵을 크게 2스푼 넣어 찬 우유랑 먹으면 별미 중 최고별미였다. .
김구이와 달래간장, 그리고 냉이된장찌개
달래와 냉이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할 때마다 기호도가 높아져갔다. 구운 김에 밥을 한 입 넣어 돌돌 말아서 찍어 먹는 간장. 그 안에 들어있는 게 대파인지 쪽파인지 뭔지 모를 시절이 지나가다 문득 그 맛이 낯설고 향긋해서 알게 된 달래간장의 맛. 밥에 반숙 계란후라이 얹고 달래간장 듬뿍 한 숟갈 넣어 슥슥 비벼 먹는 법을 엄마에게 배웠다. 봄밤, 저녁상에 달래간장과 냉이된장찌개가 오르면 봄이구나, 하면서도 이제 봄이 곧 끝나감을 알게 된다. 그 잠깐 동안 맛 볼수 있는 별미에 작은 즐거움을 느낀다.
첫 한 입은 김 위에 밥만 넣어서 휙 말아 달래간장에 푹 찍어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맛으로 먹고, 두번째 한 입은 냉이된장찌개의 야들야들한 두부를 자작한 국물까지 한 입에 넣고 입 안 가득 냉이향을 느끼고 세 번째 한 입은 달래간장, 냉이된장국물이랑 두부 넣고 밥에 비벼 김에 싸 먹는 것. 김의 은은한 단 맛이 새롭게 입을 감싸고도니 계속계속 식욕이 돈다. 살이 오르는 계절은 봄, 지금이었다.
조용한 작가생활
따뜻한 봄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