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처럼 빠른 사이

고백은 말을 트이게 한다

by 이정우 글

드라마를 엄청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보게 된다면 로맨스 드라마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선택하는 편이다. 상반되는 이유로 그 두 가지를 선택하는데 로맨스 드라마를 선택할 때는 빠른 스토리 전개가 좋다는 이유에서였고, 소설 원작 드라마를 선택할 때는 여느 드라마와는 다르게 두 주인공의 갈등이나 상황이 느리게 풀린다는 이유에서였다. 빠른 전개 속에서는 내가 가지긴 힘들었던 용기와 설렘들을 엿볼 수 있었고 어떨 땐 그런 것을 구경할 때 느끼던 설렘이라도 되찾고 싶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느린 전개는 적막함으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들은 대부분 슬펐지만 시청자가 감정이입하지 못하게 만들 만큼의 적막함을 여지로 남겨두었다.


로맨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 마음이 이어지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떨 때는 주인공이 애써 눌러왔던 고백을 하는 장면에서 “사귀고 있는 게 아니었어?”하고 놀랄 만큼 이미 이뤄진 상태에서 하는 고백이 생소해지기도 한다. 그런 것이 로맨스 드라마를 애매함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애매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몇 년 전엔 학생들이 연애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잠깐이지만 학교를 다녀보며 학교는 배움보다 사랑이 많이 이뤄지는 장소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양으로 치면 당연히 배움이 많았겠지만 더 끊김이 없이 이뤄지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외로움을 둘러메는 것이라고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사랑 같은 채워짐의 감정은 외롭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부가적인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휩쓸려야 할 감정을 계획해버리는 경우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 그 청사진에서 나는 항상 빠졌지만 소설 원작의 드라마를 본 듯 나의 현실을 잘 느끼고 있었기에 누군가의 속도에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있었다. 배운 것도 적지만 가진 마음은 0g이어서 사랑 빼고 다 배운 사람으로 굳혀진 채 학교를 졸업했다.




드라마의 설렘도, 학교에서의 이뤄짐들도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학교에선 두려움만 가득 안은 상태의 고백들도 많았고 그런 고백들은 항상 친구로 지내자는 결과로 나의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은 많이 차여 본 친구들이다. 그 정도로 고백을 많이 경험했다는 뜻이다. 만약 그 친구들이 자신의 감정을 짝사랑으로만 가진 채 자신의 움츠림을 수줍음과 서글픔으로 번갈아 간직했다면 내 곁에 이리도 오래 남아있진 않았을 것이다. 고백, 그리고 차임 후에 숨고 싶은 그림자가 필요한 친구들에게 나는 그 그림자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원래는 곁에 있는 한두명의 친구들에게만 속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친구였는데 고백을 하고 말이 트였는지 나와도 좀 더 깊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쨌든 그 친구들에겐 친구로 지내자는 말 그대로 다른 친구 한 명이 늘었다. 기뻐할진 모르겠지만 친구들도 결국엔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이미 이뤄진 상태의 고백은 아름답게 간직되기 어렵고 한껏 물러선 마음으로 건네본 자신의 처음이 더 깊게 추억될 것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처음이 채워지지 못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고백이라는 감정을 전했다는 것 자체로 그 처음은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림자가 되어주느라 두 사람을 모두 물끄러미 관찰한 내가 보장하겠다.


소설 원작 드라마는 해석해가며 본 것이 아닌데도 한 편을 다 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느새 나중에 보기로 결정하게 될 때가 많았다. 드라마가 웃음 포인트 하나 없이 너무 조용하기도 했지만 나는 조용한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특유의 조용함들이 장면으로 쪼개져서 갑자기 떠오를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진지한 분위기의 드라마를 끝까지 보기 어려운 이유는 조금 더 내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많고 빛도 밝은 낮에야 심오하고 두꺼운 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하겠지만 행복보다 이뤄지기 쉬운 게 아픔이라는 것을 이미 모두가 느끼고 있다. 로맨스 드라마의 살랑거리는 분위기는 모두의 것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겪을 수 없는 것이다. 로맨스 드라마는 관찰하듯 보게 되는데 소설 원작의 차분한 드라마들은 이미 내가 주인공의 상황들을 아는 듯 멍하게 보게 된다. 아마도 로맨스 드라마는 내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욱더 편하게 볼 수 있고 소설 원작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마음이 얇고 사연은 두껍다는 나와의 커다란 공통점이 있기에 뻔하게 볼 수 있는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로맨스 드라마만큼 빠르게 무엇을 가졌다면 도입과 결말 모두 웃을 테지만 정작 나 자신은 웃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날 것 같다. 다만 그것을 정말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감상한다면 평소엔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오해할 만큼 기분이 들뜰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예 남의 입장에서 본다면 해피엔딩에 예견된 이야기로 보여질 것이다. 이왕이면 나도 개인의 타인이 되어 주변의 기쁜 얘기들을 더 많이 관찰하고 싶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는 주변 친구들이 고백을 했다거나 연애를 하는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없다. 말이 트이는 친구들이 없어서 심심함은 배가 되고 이럴 때일수록 소설 원작의 우울한 드라마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진지한 감정에 대해 연구하고 다시 마주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맨스 드라마와 소설 원작의 드라마 모두 한 편씩 보고 와야겠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곁까지 드라마틱하지 않으니 드라마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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