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 소피아 코폴라
그곳은 온통 번쩍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네온사인이 빛나고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도쿄엔 그 모든 것들이 시종일관 반짝이지만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엔 적막만이 감돈다. 마치 흑과 백 두 색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이 영화 속 인물들의 마음을 부각하기에 도쿄라는 곳은 더없이 어울리는 도시였을 테다.
도쿄에서 7년 동안 체류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아닌 게 아니라 온통 이질적인 그 세계를 외지인의 눈으로 보아낼 줄 안다. (하지만 외부인의 시선으로 타문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해의 부주의는 온전히 이 영화의 책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원제가 도쿄의 지역적 특색을 담아낸 어떤 제목이 아닌 'Lost in Translation'(통역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의미가 왜곡되거나 생략되어 전달되는 것)라는 점에서 드러나는 것은 결국 이 영화의 이질적인 환경이 그 자체로 세상의 소통과 단절된 자들의 마음을 그려내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이다.
결혼의 권태를 겪고 있는 영화배우 밥(빌 머레이)과 일에만 열중하는 남편의 모습에 문득 두려움을 느끼는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우연히 도쿄의 한 호텔에서 마주치게 된다.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같음 마음을 가지고 있던 둘은 급속도로 친밀해진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엔 온갖 불능이 가득하다. 온통 일본어로 가득한 그곳에서 영어로의 소통은 불가능의 영역으로 괄호 쳐지고, 번역의 과정을 거친다 해도 그 의미는 흐려진 채 입에서 입으로 무망하게 전달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는 비행기는 좀처럼 오지 않고 낯선 타국에서 그들은 잠조차 제대로 청하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엔 황혼기에 접어든 기나긴 동행에서의 무력감과 이제 막 시작한 신혼에서의 불안감이 있다.
이 영화 전체에 감도는 소통의 불능은 비단 영어와 일본어, 혹은 그 발음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일대일 또는 일대 다수의 대화 구조가 반복됨에도 그 소통이 보이지 않는 벽에 계속 가로막히는 까닭은 결국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아서일 테다. 아마 일본 절을 방문한 후 샬롯이 호텔방에서 숨죽여 울던 이유는 그곳에서의 경험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체험하고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마음의 황폐함을 의도치 못한 곳에서 불쑥 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소통에서 중요한 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찬 진심이다. 영화 중 팩스와 전화와 편지를 통해 수도 없이 반복되는 '사랑해'라는 말이 좀처럼 효력을 갖지 못했을 때, 관계의 끈을 잡기 위해 억지로 내뱉은 말이 좀처럼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까닭은 그런 것 때문이다. 밥이 관계자가 보낸 콜걸과 대화할 땐 언어가 통했음에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반면, 병원에서 만난 노인과는 충분한 언어적 교류가 없었음에도 끝내 그 빈 손에 곰인형을 쥔 채 샬롯을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진료실 안의 어떤 이를 기다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때 영화에서 소통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사실상) 유일한 두 사람이 샬롯과 밥이라는 사실은 당연해 보인다. 두 사람은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혹자는 두 사람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플라토닉적인 사랑의 기류가 흐르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밥이 밥이고 샬롯이 샬롯이어야 했던 까닭은 두 사람은 마음 속 외로움을 품고 있고, 지난한 소통의 끝에서 결국 서로의 마음을 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꼭 53세 빌 머레이와 19살 스칼렛 요한슨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사랑도 소통이 되나요?>에서는 사실상 같은 공간적 맥락이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는 방이 있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 거치는 복도가 있으며 나가서 마주하는 거대한 광장이 있다. 광장에서의 쓸쓸함이 밀실에서의 외로움보다 크다고 말할 순 없다. 밀실에서 얻은 상처가 광장에서의 그것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는 채 광장에 들어서면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서로를 마주본다. 그러니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을 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그 사람의 방이었을 게다. 샬롯이 밥의 방 침대에 누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을 때, 밥이 샬롯을 그녀의 방에 데려다주고 이불을 덮어줬을 때, 그들은 그 방에서 서로의 모습을 또렷이 보아냈었을지도 모른다.
밥이 샬롯을 떠나보낼 때 그는 어떠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나. 샬롯이 밥을 떠나보낼 땐 과연 어떤 모습이었나. 처음 도쿄에 와서 마주한 풍경과 떠나갈 때의 풍경은 과연 무엇이 달랐을까. 물론 달라진 건 없지만 중요한 건 마음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복도를 지나 다시금 광장으로 발 디딛을 용기를 불어넣어 준 그 마음일 것이다. 그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무슨 얼굴로 도착해서 어떤 표정으로 떠나는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