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빵집 밖 10살 나"
우리 집은 홍은동 버스정류장에서 15분가량을 걸어서 도착한 평지로부터도
20분 이상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여 있었고,
10분 도보거리쯤 도달한 평지인 골목길의 코너엔 큰 목련나무가 있는
파란 대문집이 나랑 가장 친하게 지냈었던 지연이네 집이었었다.
홍지연의 아버지께서는 당시 개인택시 운전을 하셨었기에,
당시 어린 나의 눈에는 지연이네는 우리 집보다 훨씬 여유롭게 사는 것으로 보였었다.
왜냐하면 지연이네 집에는 정말 영롱한 광채가 나고,
열면 건반 위에는 벨벳 덮개가 깔려 있는, 그것도 중고로 구입한 것이 아닌,
지연이 아버지께서 새것으로 구입해 주신 검은색 영창 피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이에게는 내 기억으론 4 명의 동생이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두 명의 여동생과 아들을 낳기 위해 다시 낳으신
쌍둥이 남동생, 그래서 집은 늘 아이들로 북적거렸지만,
또한 다양한 간식들과 먹거리도 늘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난했던 나에게는 지연네 집이 너무 부러웠었다.
게다가 지연이 엄마는 늘 집에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시고,
아이들을 돌보셨었지만, 우리 엄마는 우리 4남매를 돌보시면서도,
늘 일도 나가셔야 하셨었기에, 집에 맛있는 것도 많고,
엄마도 늘 집에 계시는 지연이가 나는 너무 부러웠었다.
나는 어릴 때 소원이, 빨리 어른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호떡도 한 번에 10개씩 사 먹고, 핫도그도 몇 개씩,
그리고 짜장면도 먹고 싶을 때마다 마음껏 먹는 게 소원이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10살 때 꿈꿨던
소원을 이루어 버린 것을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지금은 살이 찌고, 병에 걸릴까 봐 그렇게 못 먹는 수준까지 된
현재의 나는 10살의 내가 본다면 나름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꽤나 춥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지연이와 나는
학교를 끝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오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우리는 우리 집이 있는 문화촌 쪽 골목으로
걸어서 집에 가려면은 간호대 부속병원을 넘어서 다리를 건너서 가야 했었다.
그런데 지연이가 우리가 늘 지나면서 그날그날 막 구운 빵들을
유리 넘어 가끔 구경하던 동네 빵집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나 잠깐만 기다려줘. 금방 나올게"
그리고는 지연이는 빵집으로 들어갔다.
어린 마음에 혹시 지연이가 돈이 생겨서 빵을 하나 사서 나랑 나눠어
먹으려 하나 하며 기대하며, 알겠다고 하고 나는 빵집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지연이가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지연이는 털모자와 목도리를 벗어서 의자 위에 놓더니,
테이블이 놓여 있는 옆의자 위에 앉았다.
.
조금씩 내리던 눈은 갑자기 함박눈이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무척 좋아해서 우리 집 재롱이에 버금갈 정도로
눈이 오면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껑충껑충 뛰는 강아지 같은 어린아이였었다.
나는 아 지연이가 빵을 동생들 것까지 시키나 보다고 생각하며,
하늘에서 오는 눈도 벙어리장갑에 받아도 보면서,
또 건너편에 군고구마 아저씨께서 장사 준비하시는 것도 구경하면서
신나 하다가 다시 지연이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져 버렸다.
지연이는 따뜻한 난로 위에 주전자에서 물이 끓고 있는
빵집안 테이블에 앉아서 막 나온 따뜻한 우유 한잔과,
내가 세상에서 죽고 못 살 정도로 좋아하는 단팥빵 한 개
그리고 슈크림빵 한 개가 예쁘게 세팅된 스테인리스 접시 위의
그 빵들을 포크로 찍어서는 우유와 함께 천천히 먹고 있었다.
추운 한겨울 그것도 눈 내리는 밖에서 기다리는 절친이라 믿었었던
나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착한 아이 증후군"이 어린 그때에도 있었는지,
나는 그냥 집으로 혼자 돌아오지도 못하고,
이제는 좋아하는 눈구경도 동네 사람들 구경도 멈춘 채
홍지연이 하는 행동 일일이 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에도, 아 우유가 식으면 추우니 빵이랑 우유랑 빵을 한 개를 먹고,
친구인 나에게 주려는 건가?라는 어린이나 할법한 유치한 기대를 하였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지연이가 내게 여기서 기다려 달라고 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인지,
나는 끝까지 그 아이를 기다렸고.......
그로부터 한 30여분 후에.....
지연이는 빵 두 개와 우유 한잔을 다 먹어치우고,
따뜻한 엽차(보리차였나? 그때는 왜 그렇게들 불렀는지 모르겠다)까지
한잔 마신 후에, 다시 털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나와서,
눈이 모자와 어깨에 수북이 쌓인 나에게 말했다.
"이제 가자 집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같이 걸어서 높은 언덕 위 집으로
눈이 쌓인 가파른 언덕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벽을 잡으며 걸어 올라왔고,
지연이는 10분 만에 도착한 자신의 파란 대문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꽝 닫으며,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외치며 들어가 버렸다.
난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10살밖에 안 먹은 어렸던 나였는데도
내가 너무 한심하고 속이 상해서, 울면서 집으로 다시 10분을 더 올라왔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대문 안 재롱이를 끌어안고 큰소리로 엉엉 울어 버렸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는 가끔 그때가 홍지연이 떠오르고는 했었다
.
그 후로 내가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시절, 멀리 전학 간 후 연락이 끊겼었던,
지연이를 성장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명동에서 같이 만나서 맛있는 부대찌개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우리가 10살이었을 때 그때 빵집 앞에서, 나 많이 서운했었다고 말하자,
지연이는 기억을 전혀 못하지만, 왜 자기가 그렇게 못되게 행동했을까 하며
정말 미안했었다고 사과를 하였다.
21살이 된 지연이는 순하고 예쁘고 착한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있었고,
우린 10살 때 해프닝을 재미난 동화책을 다시 읽듯이 수다와 커피로 풀어갔다.
"어린 시절 동화 같은 추억 그리고 그때의 꿈을 이룬 나여서 행복하다"
**이미지: Pixaboy